감축목표 강행 땐 車부품·레미콘 중소기업 공장가동 축소 불가피

철강업계, 배출권 구매·설비 전환 비용만 수조원대 추정 전기車 급격 전환시 내연기관 부품中企 벼랑끝 위기 몰려 탈탄소 따른 시멘트 감축목표↑…900여 레미콘업체 흔들

2025-11-18     이권진 기자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11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및 제4차 계획기간 배출권 할당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11월 11일 국무회의에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53~61%로 확정하자 산업계 전반에 ‘현실을 외면한 목표’라는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탄소 감축 기술이 상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감축 속도를 직선형으로 설정한 것은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가장 타격이 예상되는 곳은 바로 철강업계다. 철강 1톤당 이산화탄소를 2톤가량 배출하는 고탄소 산업 특성 때문이다. 배출권 구매와 설비 전환에 드는 추가 비용만 수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철강업계의 온실가스 핵심 감축 기술인 수소환원제철은 2037년부터 단계적 도입이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포스코 등 주요 철강기업이 2030년대 중반 이후를 실현 시점으로 보는 만큼 현재 정부가 확정한 2035년 감축목표를 맞추려면 2~3년 동안은 막대한 배출권 구매비용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점진적 전기차 전환 호소

자동차 업계도 충격이 크다. 정부는 2035년 신차의 70%를 전기·수소차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현재 시장 여건상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전기차는 누적 보급이 90만대 수준에 불과한데, 정부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매년 60만~70만대씩 판매해야 한다.

내년 정부 예산상 보조금 지원 규모가 30만대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사실상 달성이 어렵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95%가 중소기업이며, 이 중 86% 이상은 전기차 매출 비중이 30%에도 못 미친다. 엔진·연료계통·변속기 등 내연기관 핵심부품을 생산하던 중소기업들은 전동화 전환이 본격화되면 핵심 일감이 통째로 사라질 위험에 놓인다.

더 큰 문제는 대체 일감이 바로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기·수소차에 들어가는 배터리팩이나 전력제어장치 등은 기술장벽이 높고, 완성차 업체 중심의 신규 밸류체인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2·3·4차로 이어지는 중소 협력업체는 완성차별 공급망에서 대거 탈락하거나, 인력 구조조정에 내몰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계는 “전기·수소차 전환 속도가 NDC 목표에 따라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추진되면 지역 공단 단위의 부품 중소기업이 줄줄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석유화학과 시멘트 업종에 포진한 중소기업들의 부담도 예외가 아니다. 석유화학은 대기업 공정이 멈추면 수백 개의 하청·가공 중소기업이 직격탄을 맞는 주요 산업이다. 따라서 앞으로 전기요금과 배출권 가격이 동시에 오르면 합성수지·첨가제 등 중간소재 기업은 원가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어려워 줄도산 위험에 놓일 수 있다.

 

5년간 배출권 추가비용 14조

시멘트 감축 목표도 상향되면 감축 비용이 대기업인 시멘트업계에서 곧바로 레미콘 중소기업에 전가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 900여개 레미콘 업체는 대부분 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멘트를 주원료(40~45%)로 모래·자갈·물·혼화제를 배합해 콘크리트를 생산하는 2차 제조업(가공산업)이다. 현장에선 “시멘트 단가가 10% 오르면 중소 레미콘업체의 절반이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위기감도 팽배해지고 있다.

전력 부문의 부담도 크다. 정부는 발전사가 온실가스 배출권을 지금의 10% 대신 내년 15%, 2027년 20%, 2030년 50%까지 유상 구매하도록 했다. 발전사들이 2026~2030년 5년간 배출권을 사기 위해 내야 할 추가 비용은 14조원에 이른다. 이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불가피해졌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이미 최근 3년 반 동안 70% 가까이 올랐다. 이로 인해 주물·도금 등 뿌리업종 중소기업들은 “전기료가 제조원가의 20%에 육박한다”며 “요금이 더 오르면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산업계는 공통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에는 동의하지만 규제 중심이 아닌 지원 중심의 전환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정부의 감축 목표 속도를 완화하기보다 산업계가 따라갈 수 있도록 △전기요금 예측제도 △기술개발 보조 △중소기업 금융지원 같은 현실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NDC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 2015년 파리협정에 따라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각 국가가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유엔(UN)에 제출한다. 각국은 자국의 경제 및 산업 여건을 고려해 5년마다 목표를 수립하며,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