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업 칼럼] 국방산업의 민간화… 중소기업, ‘디펜스 테크’ 주역 급부상
대기업 전유물에서 스타트업·로봇 中企 등 참여 확대 국방부와 협약, 감시용 무기 시제품 공동개발 첫 단추 제도개혁이 관건… 조달시장 개방·인증체계 개선해야
디펜스 테크(Defense Tech)는 인공지능(AI), 로봇, 반도체, 통신, 데이터 등 민간 첨단 기술이 국방·안보 영역으로 융합되는 새로운 산업을 뜻한다. 디펜스 테크는 이제 기술산업의 변방이 아니라, 국가 산업정책의 중심축으로 이동하고 있다. AI, 로봇, 반도체, 통신, 데이터가 융합되는 이 산업에서 중소기업은 더 이상 조연이 아니다. 기술의 민첩성과 응용력 그리고 창의적 시도야말로 우리나라의 새로운 안보 자산이 되고 있다.
지난 2024년 가을,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기술동맹 포럼’은 한 편의 산업 드라마 같았다. 전통적인 방산회의라면 으레 군 장성과 방위산업체 간부들이 포진했을 텐데,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스타트업 대표, 로봇 개발자, AI 연구자들이었다.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에는 탄약이나 전투기가 아니라 코드와 알고리즘, 그리고 데이터 네트워크가 등장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앞으로의 안보 경쟁은 총이 아니라 코드로 결정된다. 병력보다 기술이 중요하단 것이다.”
미 국방부는 ‘방위혁신단(DIU, Defense Innovation Unit)’을 통해 스타트업과 비(非)전통 기업의 기술을 국방에 신속히 도입하는 체계를 확립했다. 수년 걸리던 조달 절차가 수개월로 단축됐다. 시제품이 곧장 실전 테스트로 이어지는 이른 바 ‘패스트트랙 제도(OT 계약)’가 일상화됐다. AI 드론, 자율주행 정찰차량, 위성영상 분석 시스템 같은 기술은 이제 실험실이 아니라 작전 현장에서 검증되고 있다.
일본 역시 ‘안보의 산업화’를 본격화했다. 지난 2024년 방위장비청(ATLA)은 ‘듀얼유즈(민군겸용)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을 선언했다. 민간 기술기업을 방위산업 혁신의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국방용 기술개발 예산을 2025년까지 두 배로 늘리고, 스타트업이 국방용 시제품을 제작하면 평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지방 중소기업의 배터리·센서 기술이 자위대 실증사업에 투입된 사례도 등장했다. 일본에서는 미츠후지(Mitsufuji) 같은 기업이 민간에서 개발한 전자파 차폐 섬유기술을 군용 방호소재로 전환하는 등 듀얼유즈 기업의 활동이 빠르게 늘고 있다.
대기업에 편중된 국방 R&D 예산
미국과 일본이 이렇게 움직이는 이유는 뭘까? 바로 전쟁의 양상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는 더 이상 무기가 뭐냐는 문제가 아니라 기술 생태계의 경쟁력이 됐다. 국가는 이 생태계를 통제하기보다 민간과 공유해야 살아남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판단하고, 로봇이 병력을 대신하며, 데이터가 방어선을 구축하는 시대란 것이다. 그 변화의 정점에 디펜스 테크가 있는 것이다.
한국의 방위산업은 세계 10위권 기술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산업의 구조는 여전히 1990년대식 수직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한화시스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이 국방 주요 프로젝트를 총괄한다. 이를 두고 체계종합사업자라고 하는데 그 아래 수천개의 중소기업이 부품·소재·모듈을 납품하는 피라미드 구조가 작동한다.
이 산업 구조는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상당히 안정돼 있어 보인다. 다만 사업이나 기술 혁신의 문은 좁다. 새로운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이라 해도 위와 같은 시스템에 편입되지 않으면 보안인증·품질평가·납품인증 등 수많은 절차 앞에서 기회의 발이 묶인다. 결국 방위산업에 접목할 수 있는 신기술은 민간시장에서만 꽃피우고 군수시장에선 잘 활용할 수 없을 수 있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정부는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2023년 개정된 ‘방위산업기술진흥법’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국방 연구 참여를 확대했고, 현재 전국 11개 지역에서 국방벤처센터가 운영 중이다. 이 센터들은 기술이전, 시제품 제작, 군수적합성 평가를 지원한다. 그러나 기업현장에선 제도적 장벽은 여전히 높다고 한다.
국방 R&D 예산을 보면 그 편중이 여실히 드러난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R&D 투자 규모는 약 17배의 격차를 보인다.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과제는 분명 있다. 그러나 실질적 발주권은 대부분 대기업이 쥐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국의 기술은 혁신 속도를 유지하더라도, 방위산업의 구조는 과거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세계가 민군융합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여전히 방위를 ‘특수산업’으로 묶어두고 있다. 기술경쟁보다 시스템 개혁이 더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K-방산 기술파트너로 진입
그렇다고 문이 완전히 닫힌 것도 아니다. 디펜스 테크의 중심축이 무기체계에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기반 기술로 옮겨가면서 중소기업에게도 기회의 틈이 생기고 있다. 바로 AI, 로봇, 센서, 통신, 보안 등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AI 센서와 데이터 융합 부품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드론, 정찰로봇, 전자전 장비의 핵심은 센서와 알고리즘인데 이 분야는 대기업이 독점하기 어렵다. 부산·강원·대전의 국방벤처센터에서는 중소기업이 개발한 자율비행 모듈과 열영상 분석 기술이 군과 공동으로 실증을 진행 중이다. 작은 기업이지만 기술의 정밀함으로 무장했다면, 이제는 국방 실험무대에 설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민군겸용(Dual-use)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민간 물류로봇이 군수품 운반용으로 전환되고, 위성데이터 분석 기술이 정찰·재난대응 체계로 전용된다.
앞에서 말한 일본의 사례처럼 민간 기술을 군용으로 확장하는 듀얼유즈 스타트업의 모델이 한국에서도 충분히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로봇·AI 스타트업 몇 곳이 국방부와 실증 협약을 맺고 자동운반·감시용 프로토타입을 공동 개발하는 단계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수출형 협업 모델도 등장했다. 단독 수출은 어렵겠지만 ODA(공적개발원조) 기반의 K-방산 수출 프로젝트에 기술 파트너로 동반 진입하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국방 인프라 사업에서 통신 모듈과 전력센서를 공급한 국내 기업들이 그 예다. 이런 모델은 중소기업이 단순한 하청이 아니라, 공동개발자로 수출형 동반 성장을 가능케 한다.
결국 해법은 ‘협업’이 아닐까 싶다. 개별 기업이 아니라 관련 협동조합·산학연 클러스터·AI 벤처 연합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 인증·보안·시험평가 같은 진입장벽을 공동 대응할 때 중소기업은 비로소 방위산업 생태계의 주체로 설 수 있다.
中企 조달 문턱 낮춰야
디펜스 테크의 성패는 제도 개혁의 속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개선책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조달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방위사업청의 체계종합사업자 중심 구조를 조금 완화하고, 중소기업이 직접 제안서를 제출해 실증평가를 받을 수 있는 ‘열린 조달제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산업부나 중기부와 같이 기업계와 연결된 주무부처가 방위사업청의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산업부의 로봇·AI·센서 연구성과가 국방부의 R&D와 분리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미래국방 2030 기술전략’을 토대로 2025년 국방 AI 기술로드맵을 업데이트 중이다. 이 로드맵이 민간 연구성과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중소기업의 기술이 실전 무대에 설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인증 체계를 바꿔야 한다. 국방 분야의 인증·보안 절차는 대부분 대기업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그래서인지 관련 업계 중소기업들은 이러한 절차 자체를 감당하기엔 인력과 비용이 벅차다고 한다.
이밖에도 민군의 기술협력을 ‘산업화’ 단계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중소기업이 직접 시제품을 제작하고 실전 평가를 거치는 디펜스 테크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연구에서 산업으로, 또 산업에서 수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진정한 민군 융합 생태계가 완성되지 않을까 싶다.
- 디펜스 테크 (Defense Tech) : 첨단 국방 기술을 의미하며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로봇공학, 무인 시스템 등 고도의 과학 및 공학 기술을 국방 분야에 적용해 미래 전장 환경에 대비하는 기술 분야.
- 권보국 한국블록체인사업협동조합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