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감성 누리다보니 무심결에 ‘당진앓이’
신리성지 여름에 더욱 빛나는 ‘내륙의 제주도’ 조선 제일 교우촌, 성스런 기운 물씬 왜목마을해변과 선상횟집 일출·일몰·월출까지 한곳에서 만끽 두툼하게 썰어주는 자연산회 일미 아미미술관 지역 풍속⋯문화·건축 원형대로 보존 카메라 들이대면 모든 곳이 ‘인생샷’ 삽교호놀이동산 시간이 멈춘듯한 레트로풍 분위기 낮보다 찬란한 놀이기구 발길 유혹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당진은 불볕더위도 잊게 하는 감성과 낭만을 지닌 도시다. 서해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는 특별한 경험을 누리고 순교자들의 길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배 위에서 선장이 무심하게 썰어주는 회를 사 먹다가도 갯벌에 나가면 바지락 한 움큼을 벌어올 수 있다. 폐교에 뿌리내린 미술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놀이동산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게 한다.
‘조선의 카타콤베’ 신리성지
당진시 합덕읍 일대에는 한국 천주교 전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장소들이 모여 있다. 그중에서도 ‘조선의 카타콤베(catacomb, 로마 시대의 비밀 교회)’, ‘내륙의 제주도’ 등으로 불리는 신리성지는 초목 푸르른 여름에 더욱 빛나는 곳이다.
여름 모내기를 마친 드넓은 평야 한복판에 십자가를 달고 초연히 서 있는 건축물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하다.
신리성지가 위치한 신리는 조선 후기에 가장 먼저 천주교 교리를 받아들였던 지역으로 마을 주민 400여 명 전체가 신자인 조선 제일의 교우촌이었다. 지금은 평야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나루가 있어 배로 외부와 왕래하기가 쉬웠다.
지금의 신리성지 안에는 천주교가 조선 구석구석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던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주교관이 위치한다. 다블뤼 주교관과 함께 역시 병인박해 때 공주에서 순교한 손자선 토마스(성인)의 생가와 성당 및 경당, 2017년 처음으로 문을 연 국내 유일의 순교미술관, 사제관, 수녀원 등 아름답고도 성스러운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성지를 둘러보다 목이 탈 즈음엔 성당 뒤편을 찾아보자. 양곡창고를 리모델링한 다목적 시설 ‘치타 누오바(Citta Nuova)’가 있다.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커다란 창을 통해 보이는 논뷰, 다양한 카페 메뉴와 함께 무더위를 삭히고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신리성지 주변, 충청도 최초의 본당이자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 매력적인 합덕성당과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탄생한 솔뫼성지도 함께 들러볼 만하다. 순교자들의 길을 수련하듯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더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 충남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135
‘거부 못할 매력’ 왜목마을해변과 선상횟집
해안의 모양이 왜가리의 목처럼 생겨 이름 붙은 왜목마을해변은 다채로운 매력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다. 해변에 도착하면 꿈을 향해 비상하는 왜가리 조형물 ‘새빛왜목’이 마중 나와 있다. 왜목마을해변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 그리고 월출까지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만조 시간이면 모래사장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물이 빠져나간 바다에선 해루질을 하며 온종일 바다에서만 놀아도 부족함이 없다. 해안 곳곳에 형성된 갯바위에서는 낚시까지 가능하다. 성인 한 사람만 허리를 숙여 겨우 들어갈 만큼 아담한 크기의 동굴이지만, 카메라 렌즈를 안쪽에서 바깥을 향해 역광으로 촬영하면 작품 못지않은 사진이 찍힌다.
왜목선착장에 다다르면 당진의 또 다른 명물, 선상횟집을 만날 수 있다. 말 그대로 갓 잡은 자연산 회를 그 자리에서 바로 떠먹을 수 있는 곳이다. 날씨와 상황에 따라 1척에서 3~4척이 운영된다.
메뉴는 우럭, 농어, 광어 등 한두 가지의 횟감과 멍게, 소라, 낙지 등의 해산물이다. 주문을 하면 그날 잡은 싱싱한 회를 바로 두툼하게 썰어준다. 밭에서 직접 기른 쌈채소와 초장, 쌈장까지 제공한다. 조업 상황에 따라 회와 해산물의 종류는 달라질 수 있다. 선착장이나 인근 좌대에서 낚시한 횟감을 들고가면 5000원에 손질도 해준다. 기상 영향으로 배가 선착장에 접안하지 못하는 날은 방문이 어려우니 참고한다.
- 충남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 844-4
‘오감만족 명소’ 아미미술관
물놀이도, 순교자의 길을 따라 걷는 것도 더위를 물리치기에 부족할 땐 실내 피서가 최고다. 당진시 순성면에 위치한 아미미술관은 땀도 식히고 감성 충전하기에도 제격인 곳이다.
옛 유동초등학교 건물을 고쳐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사립 미술관으로 전통문화 유산과 자연환경이 급속도로 파괴되고 사라져가는 현 상황에서 지역의 건축, 문화, 풍속, 생활상 등을 훼손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개방하는 생태미술관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100m쯤 걸어 들어가면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전시장이 나타나는데 낡은 건물 외벽을 가득 메운 덩굴의 모습부터가 작품처럼 느껴진다.
야외전시장은 평소 자연학습장으로 활용하며 야외 조각과 설치 미술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은 5곳으로 이뤄졌는데 입구를 기준으로 오른쪽 2개 교실에는 설치미술이, 왼쪽 3개 교실에는 기획전시 작품이 채워졌다.
사진 촬영이 제한된 다른 미술관과 달리 이곳에선 내부 어디에서도 작품과 함께 촬영이 가능하다. 전시실로 향하는 복도 천장에 메달린 핑크빛 조형물을 지나 자작나무를 닮은 순백의 나무들 사이로 새파란 이젤과 의자가 눈에 띄는 공간으로 들어서면 마치 꿈속을 유영하는 듯하다. 어디에 카메라를 갖다대도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공들여 관리하는 정원도 꼭 둘러봐야 한다. 초록잎이 무성한 여름, 수국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책 속 미지의 숲길을 걷는 것만 같다.
- 충남 당진시 순성면 남부로 753-4
‘밤낮 없는 즐거움’ 삽교호놀이동산
예부터 중국으로 통하는 중요한 바닷길이었던 삽교호는 1979년 삽교천 방조제 준공과 서해대교 건설로 인해 국민관광지로 급부상했다. 삽교호관광지에는 해군 퇴역군함을 활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삽교호 함상공원과 함께 해양테마 과학관, 당진해양캠핑공원 등이 자리해 있다.
그중 근래들어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장소는 삽교호놀이동산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레트로풍의 분위기를 자랑한다. 2001년 개장한 삽교호 놀이동산은 규모는 작지만 대관람차, 바이킹, 회전목마, 범퍼카 등 있을 건 다 있다.
삽교호놀이동산의 상징이자 서해대교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대관람차는 서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건 물론, 배경삼아 사진찍기 좋은 포토스폿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연인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놀이공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스카이레일카도 즐겁다.
해가 저물고 밤이 되면 삽교호놀이동산은 낮과는 180도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관람차는 무지개빛으로 물들고 회전목마를 비롯한 다른 놀이기구들도 오색찬란한 빛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빈티지한 분위기를 선사했던 낮과는 다른 화려한 매력에 부러 밤에 찾는 사람들도 많다. 더욱이 요즘처럼 더운 날이면 낮보다 밤이 훨씬 놀 만하다. 밤 10시까지 운영하니 하루 마무리 코스로 찾아도 좋다.
- 충남 당진시 신평면 삽교천3길 15 삽교호놀이동산
- 신다솜 칼럼니스트 - shinda.writ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