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용(서울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최성용(서울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새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대통령 직속 상생위원회 설치를 약속한 바 있고, 인수위원회는 동반성장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격상 가동하는 안을 확정한 바 있다. 이는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현상을 바로 잡는 동시에 대·중소기업의 공존공영을 통한 산업의 분업생산 내지 사회적 협업생산을 달성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원자재 가격이 연일 폭등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가격 상승분을 납품 단가에 반영하지 못해 경영애로가 커지고 있다. 지난 69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22년 제1차 대·중소기업 납품단가 조정위원회에서는 정부와 국회에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촉구한 바 있지만 새 정부 국정과제에는 포함되지 않고 있다.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역시 윤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이다.

여야 모두 법제화에 찬성하는 분위기지만 대기업은 반대 입장을 보인다. 반대의 이유로 대기업은 제도 도입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즉 기업 양측이 자율적으로 조정해야 할 납품단가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들이 저렴한 해외기업으로 공급망을 바꾸게 되면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져 큰 타격을 입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예기치 못한 글로벌 위기 상황이 도래해 글로벌 공급업체들의 공급이 끊기거나 가격인상 등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전개될 경우, 대기업은 해외로부터 안정적 조달이 불가능해질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전에 제조물책임법(PL) 도입 때에도 대기업의 반대는 극심했다. 하지만 2002PL법이 도입·시행된 이후, 우려했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납품단가 연동제도 2008년에도 한 차례 검토된 바 있으나 당시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시행되지 못했었다. 그 동안 한·일 경제협력이 깨져 특히 소··장 수입이 현재도 차질을 빚고 있는 사례를 생각한다면 비용이 증가하고 개발시간이 소요되더라도 국내 중소기업으로부터 조달하는 전략을 선택함이 바람직하다. 대기업의 반대를 위한 반대 행위는 지양돼야 한다.

·중소기업 간 거래상의 불평등한 관계, 특히 납품단가 조정 문제와 납품대금 지불지연 문제는 반세기가 훨씬 넘는 동안에도 좀처럼 원만히 개선되거나 해소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러 대·중소기업 관계 개선의 아킬레스건이 돼왔다. 대기업 위주의 거래 관행이 이뤄지다 보니 중소기업은 항상 불리를 감수해야 하는 약자의 입장이었다.

대기업이 공동운명감을 갖고 하도급 거래를 유지해야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대해 불리한 하도급 단가를 결정하지 않는 대등존중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대기업은 당장 눈앞의 유·불리를 따질 것이 아니라 장기적·거시적 관점에서 중소기업과의 동반 상생과 공동 성장에 적극 협력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정운찬 전 총리가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해 초과이익 공유제를 주장했을 때를 상기해 본다. 당시 어느 재벌기업의 총수는 초과이익 공유제를 경제학 책에서 본 바 없다고 힐난한 바 있다. 과연 중소기업 육성의 당위성을 염두에 두기나 했던 것인가? 현재도 대기업은 꽤 많은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그 막대한 자금을 99%에 육박하는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에 활용한다면 우리 경제의 체질은 더욱 개선될 수 있다.

대기업은 제품 가격을 올리거나 하청업체에 가격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위험 분산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중소기업은 급등하는 원자재 가격, 글로벌 인플레 우려, 금리상승 등 대외 악재에 매우 취약하다. 납품단가는 중소기업에게는 기업생존이 달린 문제다.

상생협력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지금,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적대적·경쟁적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 대기업은 협력과 상생의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에 대해 진정성 있는 마음을 갖고 거래할 것을 촉구한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임을 깨닫기 바란다. 정부는 법제화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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