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실물경제 타격 심각]
원유·원자재 수입가격 급등으로 중간재 단가 상승 압박 거세
유가 100불 돌파, 석유화학中企 “마지노선 80불 넘어 큰 부담”
러 나프타 의존도 높아… 기댈 건 국내 원료 대기업과 상생뿐

[글로벌 기업들 독소조항 횡포]
美 도면에 버젓이 “자국 원료만 써라”…제2 원자재 폭등 야기
中 해운사 “선급금 줘야 6개월 뒤 도착” 손실책임 배상도 회피
韓 중기 “국내외 갑질 끝이 없다”…납품단가연동제 도입 시급

과거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은 한 해다.” 최근 중소기업계에서 터져 나오는 하소연이다. 오미크론 대확산과 예상 보다 거센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그리고 갈등 봉합의 기미가 안보이는 미중 관계,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중소기업은 말 그대로 시계제로에 빠졌다.

특히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전 강행은 지난 2년 동안 축적된 코로나글로벌 공급망 불안의 기폭제가 됐다. 우리 중소기업들은 원자재 가격과 국제유가 그리고 금리와 환율이 동시에 점프하는 이른바 ‘4()’ 현상을 겪고 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뉴스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뉴스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 18일 발간한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현황 및 우리 기업 영향보고서에서 국내 기업의 경우 원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해 무역수지 악화와 제조원가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8일 보고서에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르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2020년 기준 한국의 원유 의존도(국내총생산 대비 원유소비량)5.70배럴로 OECD 37개국 중 1위다. 문제는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 정유, 철강, 화학 등 많은 산업 분야에서 비용 상승 압력이 커질 공산이 크다.

백경국 인천경기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 상근이사 원유 가격 상승의 압박이 즉각적으로 실물경제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겠지만, 현재의 인상 여파가 하반기 시장 상황에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중동산 원유가 배에 실려 국내에 들어오기까지 보통 3개월이 소요하기 때문에 국내 원료 대기업의 납품단가 결정을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는 중소기업계엔 중요한 화두다. 중소기업계는 급격한 가격 인상분을 고스란히 하청업체에 전가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원료 대기업이 비축한 원유 물량도 상당하기 때문에 변동폭이 큰 유가 상승을 중소기업과 상생으로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반도체 특수가스 수급차질

하지만 원유에서 정제하는 나프타, 에틸렌 등을 주 원료로 사용하는 국내 석유화학 중소기업들은 이번 러시아-우크라 사태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나프타는 플라스틱의 기본 원료다. 국내 기업들이 대부분은 나프타를 수입해서 사용하는데 지난해 기준 러시아로부터 가장 많이 수입하는 품목 1위가 나프타(23.4%)였다.

이에 대해 조원택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전무는 원료 가격이 오르면 바로 제품가에 반영하는 게 석유화학 산업의 냉정한 시장 원리라며 우리 업계가 감당할 수 있는 배럴당 국제 유가의 마지노선을 80달러로 보고 있었는데 최근 100달러 돌파했다는 소식에 걱정이 크다고 우려했다.

지난 24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2014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가 발생한 해인 지난 2020년부터 올해 2월까지 원유 및 천연가스 가격이 76.5% 급등했다.

국내 주요 정유사들은 전체 원유 수입 물량의 10~15% 수준을 러시아에서 가져오고 있다. 문제는 전쟁이 심화될수록 대체 수입선을 시급히 확보해야 하고 원유 가격도 더욱 올라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여기에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수출국인 러시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세계 에너지 가격은 더욱 들썩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석유제품, 기초유기화학물질, 기타 비금속광물제품, 합성수지 및 합성고무 등을 생산하는 중간재 생산 중소기업과 도시가스, 석유제품, 전력 및 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관련 중소기업들의 생산자 가격 피해가 예상된다.

한국경제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분야도 직접적인 타격이 있다. 심승일 한국고압가스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은 고압가스 쪽은 주로 크립톤과 제논 등 반도체에 들어가는 특수가스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많이 수입해 오는데 이번 사태로 수급 애로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공장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일어나면 정상적인 가동이 어려워진다.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소재인 네온과 크립톤·제논 등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의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해 한국에서 수입한 네온 98.2톤 가운데 우크라이나산은 23.2, 러시아연방산은 4.9톤으로 전체의 28% 이상을 차지했다.
 

공급망 대란 속 자국 이기주의 팽배

지난 2019년 한일 무역전쟁(소부장 분쟁)을 겪으면서 한국의 반도체 핵심소재의 독립화로 주목받던 중소기업도 이번 러시아-우크라 사태에 더욱 긴장하고 있다. 2019년과는 달리 누적된 글로벌 공급망 불안에 이어 물류대란까지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분야의 챔버(chamber) 제작 전문기업인 영광와이케이엠씨의 장관섭 대표는 핵심소재인 알루미늄 수급의 불확실성을 염려했다.

장관섭 대표는 아프리카의 보크사이트 광물 문제부터 현재까지 수년전부터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이 불안해졌다알루미늄 가격이 40~50% 오르면서 관련 업계 전반적으로 수급 애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알루미늄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23.5달러(0.72%) 오른 톤당 3303달러를 기록해 2008년에 기록한 사상 최고치에 바짝 다가섰다. 산업용 원자재 가격이 대부분 폭등 중이다. LME 니켈 가격은 1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니켈 가격은 톤당 25000달러에 달했다.

장 대표는 이러한 원자재 폭등 속에서도 미국의 특정 장비회사가 저지르는 자국 이기주의의 횡포를 꼬집었다 그는 발주 도면에다가 자국의 원자재만 써야 한다는 독소 조항을 달기도 한다최근엔 원자재 수급이 정말 어려워 독일 쪽 소재를 쓰겠다고 간신히 미국 기업에 승인을 받았지만 물류대란으로 3개월 뒤에나 수급이 된다고 해서 걱정이라고 밝혔다.

 

엔데믹 후 물류대란 증폭 예상

전 세계 항만 물류대란의 심각성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일부 해운 선사에선 무리한 요구조건을 달며 갑질을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소기업 대표는 중국 선사를 통해 원자재를 받으려고 하니까 물류 책임보험 항목에서 운행 중 제품 손실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류에 싸인을 하라고 요구한다고 성토했다.

최근 원자재 수급에 목을 매는 중소기업들은 물건을 받기 위해 6개월 전부터 선입금을 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다른 익명의 중소기업 대표는 지금 입금하면 7월에 받는 것도 어렵다부산 항만에 도착해도 하역하는데 보름 가까이 걸린다는 얘기도 있는데 도대체 정부는 공급망 현장의 물류 시스템을 체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코로나 엔데믹 이후 각국의 급격한 경기 부흥책으로 인해 물류 병목 현상은 지금 보다 더욱 심각해 질 것으로 예상한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도 정부가 해결에 늦장을 부리는 물류대란은 중소기업으로 하여금 심각한 자금회전의 문제로 번지게 되는 요인이라며 원자재 수급의 다변화와 속도전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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