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MIT 교수, 韓 납품단가 연동제 필요성 제기]
글로벌 공급망 불안 장기화 예고
원재재값 급등 부담 나눠야 상생
협력사에 핵심자재 조달도 필요
공급 갑질 땐 대-중기 동반침몰
중기중앙회 ‘납품 연동제’ 촉구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라 이를 헷지(hedge)할 방법이 없는 중소기업을 위해 더 강한 회사(대기업)가 납품가격을 일부 현실화하거나 연동해 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GVC) 관리 분야의 석학으로 손꼽히는 요시 셰피(Yossi Sheffi·사진) MIT 교수가 <중소기업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중기 납품단가 연동제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 답변을 내놓았다.

요시 셰피 교수는 40년 넘게 전 세계 공급망 관리를 연구해온 석학이자 선구자로 MIT에서 엔지니어링 시스템학과장과 운송물류연구센터(CTL)장을 맡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 유럽·동남아시아에 물류 연구센터를 설립하며 글로벌 공급망 연구를 면밀히 주도해온 장본인이다.

지난 7일자 <조선일보> 위클리 비즈 커버스토리에서 세계경제 채찍효과, 공급망이 무너졌다는 제목으로 올해 세계 공급망 시장을 집중 조망하기도 했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제조·도매·운송 분야의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정부 기관이 자문을 요청하는 그에게 한국의 대·중기 납품단가 연동제라는 어떻게 보면 지엽적인 개별 법·제도에 대한 고견을 구한 이유가 있다.

바로 한국의 고질적인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병폐의 문제점을 세계 석학의 시각으로 한번 진단해 보자는 취지에서다. 과연 납품단가 결정 구조에 있어 한국의 대·중기 상황이 정상적인 자본시장의 논리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공급망 불안 속 상생이 답

요시 셰피 교수는 먼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수많은 원자재 가격과 물류 비용을 역대 최고치로 끌어올리면서 이른 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제현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최악의 경제위기로 불린다.

다시 말해 현재 한국에서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으로 공급 갑질을 하는 대기업의 만행이 단기간에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손쉬운 방법이 되겠지만 결국은 한국경제의 공급망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대·중기 동반 침몰의 원흉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자신들의 생산공장 가동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면서도 공급망 단기 변동성에 대비해 일부 재고를 쌓고 있는 공수전(攻守戰)을 펼치고 있다. 기업들이 판매량에 따라 적시 공급하는 이른 바 ‘JIT(Just in time)’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역설적이게도 안전재고(safety stock)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안전재고는 단기 변동성을 대응할 수 있는 임시방편이 될 수 있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공급망 불안 장기전에서는 되레 더 큰 공급부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시 셰피 교수는 <중소기업뉴스>를 통해 한국의 대기업들에게 위협받는 파트너를 지원하라고 충고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급망 불안 시장에서 서로 상생을 통해 같이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요시 셰피 교수는 지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동안 더 강한 회사는 더 나은 신용 등급을 사용해 곤경에 처한 공급 및 협력업체를 위한 대출을 확보했다이들을 대신해 핵심 자재를 조달하거나, 주문량에 대한 약속을 제공하기도 했다는 실제 미국의 기업간 상생 극복 사례를 언급했다.

요시 셰피 교수의 조언과는 반대로 현재 전 세계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을 내달리고 있다. 美中 갈등 촉발로 각종 보호무역조치 및 리쇼어링(생산기지의 본국 회귀)이 가속화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자원부국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 원자재 수출을 대거 통제하고 나섰다. 자원의 무기화는 세계 공급망 붕괴의 뇌관을 터트릴 수 있는 위험 신호다.

 

세계화가 퇴조한다

최근 중국은 리튬이차전지 음극재 재료인 흑연과 전기자동차 모터 소재인 희토류의 수출 통제를 단행했다. 세계 최대 니켈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원광 수출을 통제 중이다. 자국 내 배터리 관련 산업의 일관 공정화를 추진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덧붙여 인니는 보크사이트(철반석, 알루미늄의 원료) 수출도 중단한다고 최근 선언했다.

중국의 희토류, 인도네시아 니켈 모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자동차 산업의 핵심 원자재들이다.

유럽은 러시아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러시아가 자국 이익을 앞세워 대()유럽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에너지 수급 위기 상황에 처했다. 그 불똥은 한국에도 튀었다. 지난 12(현지시간) EU집행위원회가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형성해 시장 경쟁을 저해한다며 불허를 결정했다.

이미 글로벌 LNG 운반선 시장의 1~3위가 한국기업이며 87%를 쓸어 담고 있는 상황에서 3년이나 두 회사의 합병을 반대한 유럽의 태도에 대해 일부에선 자라(러시아 정부) 보고 놀란 유럽이 솥뚜껑(한국 기업) 보고 놀라기 싫었던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처럼 지금 전 세계 상황을 종합해 보면 누군가 우리에게 세계화(Globalism)에도 후진 기어가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알려주지 않는 듯하다.

한편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번 요시 셰피 교수의 의견에 대해 적극 환영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국내 주요 원자제 가격이 2~3배씩 뛰며 역대 최고가를 돌파하고 있다지금이라도 국회와 정부가 별도의 요청이나 조정협의 없이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을 때 그 상승분을 같이 지급하는 납품단가 연동제도입을 위한 법적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카왈 프리트(Kawal Preet) 페덱스 익스프레스 아태 및 아프리카 지역회장도 <중소기업뉴스>에 서면을 통해 소매시장 공급망관리를 위한 조언을 보내왔다. 그는 공급망이야 말로 전자상거래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라며 민첩성, 회복탄력성과 효율적인 공급망이 중요한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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