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복수의결권 도입, 무엇이 문제인가]
법사위 문턱도 못 넘은 벤처기업법… 상반기 처리 요원
지난 총선에선 핵심 공약·대선에선 ‘모르쇠’ 입장 선회
작년말 CVC 도입, 벤처시장에 현금자산 55조 유입 물꼬
김경만 의원, 중기부와 공조해 조속한 입법 발의로 결실

#“(대기업 지주회사)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도 조속히 결론을 내고 도입하는 등 혁신성 높은 벤처기업에 시중의 유동성이 유입되는 환경을 적극 마련해야 합니다.” - 2020720일 수석보좌관회의서 문재인 대통령 모두 발언

#“비상장 벤처기업의 복수(차등)의결권* 주식 발행 허용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국회에 협조를 구하겠습니다.” -2021826일 제2벤처붐 성과보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인사말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에 따른 증시 영향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쿠팡 본사.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에 따른 증시 영향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쿠팡 본사.

문재인 정부는 2020415일 총선을 앞두고 시장·기업 정책을 대거 마련했다. 특히 벤처기업 분야에서 대표적인 2개 정책이 바로 벤처기업의 복수(차등)의결권도입과 함께 대기업 지주사에 벤처캐피털(CVC)을 허용하는 방안이었다. 복수의결권은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2호 공약이기도 했다.

이처럼 정부와 여당 지도부는 두 의제에 힘을 실었고 실제 속도전을 방불케 할 만큼 빠른 도입 추진이 이뤄졌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먼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지난해 1230일 시행되면서 대기업 지주회사의 CVC 보유가 허용됐다. 지난 11일에는 GS그룹이 국내 지주회사 중 처음으로 CVC‘GS벤처스를 설립했다. GS벤처스는 공정거래법이 시행된 이후 설립된 첫 번째 지주회사 내 CVC. 지주회사인 GS가 자본금 100억원을 전액 출자해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 형태다.

반면에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공약이었던 복수의결권 관련 법안(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은 여전히 국회 본회의 문턱은 커녕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벤처기업법은 비상장 기업 창업자에게 주식 하나에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골자다.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 등이 투자를 많이 받아 창업자 지분 비중이 낮아지더라도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대중적으로 여론화가 된 계기가 있다. 쿠팡의 미국 상장 때문이다. 쿠팡이 한국의 코스피 시장을 뒤로 하고 미국행을 한 이유가 복수의결권이 한국엔 없고, 미국에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제2벤처붐 성과보고회에서 복수의결권 허용 법안을 직접 언급한 것도 경제계에서 쿠팡과 같은 혁신 벤처기업을 해외로 모두 뺏긴다는 우려가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중소기업계는 상임위원회 문턱을 1년 만에 넘은 벤처기업법이 이번엔 법사위 안건에 조차 오르지 못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CVC 가동시 과세 혜택은

당초 문재인 정부의 벤처정책 활성화 방향과는 달리 지난 2년간 CVC와 복수의결권 입법화 과정에는 서로 온도차가 극명했다. 먼저 CVC 도입은 속도전을 방불케 했다. 정부는 대기업 일반지주회사의 CVC 도입 문제를 신속 처리하기 위해 벤처투자법 개정안을 강하게 밀어부쳤다. 특이하게도 정부 입법이 아닌 의원 입법의 방식으로 법제화를 추진할 정도로 급진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720일 청와대 회의에서 조속히 결론을 내고 도입하자고 주문한 지 하루만인 21일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CVC 허용 법안을 발의했다.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산업자본의 벤처캐피털 참여를 제한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유망 벤처기업 발굴과 성장 촉진이 가능하도록 하는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을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벤처투자법 개정안은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규정을 완화하는 게 아닌 벤처투자법에 특례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보통 국회에서 특례 신설은 기존 법·규정 손질 보다 국회 통과가 상대적으로 빠른 이점이 있다.

김경만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일반지주회사의 계열사가 협업해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게 하며 CVC 설립 및 벤처투자조합 결성 시 중소벤처기업부에 등록하도록 하고 CVC의 투자 등에 대한 공시의무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한 마디로 대기업의 현금·현금성 자산이 투자시장으로 흘러나오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대기업의 일반 지주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무려 55조원이 넘는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현황 분석결과다. 조사 결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대기업집단은 평균적으로 17000억원에 달했다.

 

국내 대표 벤처기업들이 자리 잡은 판교 테크노밸리.
국내 대표 벤처기업들이 자리 잡은 판교 테크노밸리.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려

법적으로 시장만 열었다고 해서 대기업이 투자의 문을 열기는 쉽지 않다. 그러한 점에서 정부는 이번 CVC 허용 법안에 여러 가지 제도적 혜택을 마련했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경우 과세 혜택 등의 효과를 담았다. 대표적인 게 익금불산입제도. 법인이 자회사로부터 지급받는 배당금의 일정 비율을 과세소득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복수의결권 도입은 지지부진한걸까?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공언까지 한 벤처정책이 추진력을 잃은 이유가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창업주의 의결권을 주당 10개까지 허용하게 되면 소액주주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 반대하기 때문이다.

제도 도입에 더 큰 방해물이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이었다. 지난 2년 코로나 여파로 자산시장이 과열되면서 소액 개미투자자의 보호가 정책 결정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여야의 대선 후보인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도 자신들의 대선 공약에 소액주주 권익 보호 정책을 담았다.

4.15 총선을 지나 이번 대선을 맞이하면서 핵심 국정과제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변화에 업계에선 큰 혼란이 가중되는 분위기다.

벤처업계는 복수의결권 도입은 벤처업계의 오랜 염원이었는데, 이렇게 찬밥 신세가 됐다는 게 아이러니하다며 국회의 안일한 입장 변화를 지적했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두 달도 안남은 상황에서 오는 2월 여야가 임시국회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하지만 2월 국회의 주된 안건은 추가경정예산 심사가 될 전망이다. 따라서 벤처기업법이 또 한 차례 밀리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블록체인 업체의 한 관계자는 “OECD 36개국 가운데 총 17개국이 복수의결권을 시행하고 상위 4개국인 미국·중국·영국·인도도 포함돼 있다라며 한국이 벤처기업의 혁신을 키우고 유니콘 기업(회사가치 1조원 이상)을 만들고 싶다면 복수의결권을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수의결권대주주가 보유한 지분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초기 단계 벤처기업에 투자금액이 과도하게 몰리며 창업주가 경영권을 잃고 외부자본에 휘둘려 근시안적 경영만 이뤄지다 실패하는 현상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CVC(Corporate Venture Capital)대기업이 전략적 목적으로 독립적인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 원칙에 따라 그간 일반 대기업 지주회사는 벤처캐피털을 계열사로 둘 수 없었지만 20211230일 공정거래법 개정에 따라 한국도 구글, 인텔 등 글로벌 대기업처럼 지주회사가 유망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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