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훈 칼럼니스트
김광훈 칼럼니스트

최근 우연한 기회에 휴대폰을 바꿨다. 기존 제품을 아무런 불편 없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엔 평균 교체주기를 꽤 넘겼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신제품의 편리함에 푹 빠져 버렸다. 두 배로 커진 화면, 가벼운 터치로 켤 수 있는 전원, 옆으로 옮긴 지문 인식 장치 등 고객의 사소한 불편함을 덜어주려는 <진심>에 감동했다. ‘지름신에 대한 원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최고의 성공은 이미 실행하고 있는 것을 약간 개선하는 데서 온다는 의외의 성공 법칙을 이 휴대폰 회사는 이미 터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10년 전쯤 회사에서 임원용 승용차를 받은 지인이 타이어 공기압 표시 기능도 있다며 은근히 만족감을 드러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몇 년 전 승용차를 바꿀 때 보니 이젠 특별한 기능 축에도 못 드는지 메뉴 속에 숨겨져 있었다. 국민차인데도 바로 전에 타던 차에 비해 새롭게 늘어난 옵션만 해도 15가지가 넘는다. 예전 차로 아무런 불편 없이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이해가 안 갈 정도다. 개를 싫어하던 동료가 어떤 계기로 유기견을 입양하고는 그동안 개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던 것이 생각난다.

요즘 대선후보로 나선 여야 정치인들의 국민에 대한 구애가 마치 <겨울 연가>에서 유진을 두고 경쟁하는 남자들 같다. 결혼(당선)하고 나면 바뀌는 걸 뻔히 알면서도 흐뭇하다. 아무리 호사스러운 것도 일단 자신의 것이 되면 더는 사치가 아니고 생활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국민의 눈높이가 예전 같지 않다. 대통령이라는 임무와 위치가 만기친람(萬機親覽)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닐 테지만, 평소에는 사소한 분야로 여겨졌던 부분을 두루 살펴주니 선거 비용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는 대통령이 프랑스 인구만큼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데 이젠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오천만 명쯤 되는 것 같다. 그만큼 이해집단이 다양해졌다는 뜻이다.

외교, 안보 등 뭐 하나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되겠지만, 지난번 요소수 사태를 겪으면서 비상계획(BCP: Business Contingency/Continuation Plan)과 서플라이 체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됐다. BCP에는 공급망을 교란시키는 일체의 거의 모든 상황이 상정돼 있다. 정치, 사회적 위기는 물론 전쟁, 전염병, 지진, 노동 쟁의, 미디어 관련, 단수, 단전 등 평상시엔 잘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 대비한 대응책이 기술돼 있고 실행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도 한다. 실제로 연평도 포격사건, 후쿠시마 원전 사고, 메르스, 사스, 코로나 19 등이 발생했을 때 고객들의 빗발치는 문의와 현장 점검을 경험했다.

대기업들은 전담팀과 자금력이 있어 이런 위험을 어느 정도 회피할 수 있지만 소상공인과 개인사업자들은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특히 공급망이 다양하지 않을 경우 이런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공급망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다. 구매 물량을 집중하지 않으면 조달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소요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협력업체나 국가가 극소수로 한정돼 있어 돈만 있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다. 단일 또는 소수 공급망에 의존하는 품목이 수백 여가지에 이른다는 당국자의 말은 이런 문제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는 불씨를 안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번 대선은 미래에 교각살우하지 않으면서 진심과 실행력을 잘 어필하는 쪽이 승리를 가져갈 것으로 믿는다. 사회 각 부문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를 더 잘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자원을 분배하는 곳에 승부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부분 단기적인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장기적인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 언급하기는 조심스럽지만, 현 제도가 갖는 한계이기도 할 것이다.

저출산 문제만 해도 그렇다. 단기적으로는 부양비 지원도 필요하지만, 사회 문화적인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 저출산에 대한 보도 매체의 의도는 개선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역효과만 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수조 단위의 세금을 퍼붓고도 이렇다 할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게 그 반증이다. 공익광고가 아닌 자연스러운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 사안에 따라 인문학적인 접근과 소프트웨어 측면에 개선의 실마리가 있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듯싶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중소기업의 만성적인 인력난에 대한 해결책도 독일 등의 우수 사례를 참고해 가면서 긴 호흡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각종 공약으로 시야가 어지러울 정도지만 당장 실적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에 매몰돼 놓치고 있는 부분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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