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에서 보낸 36년의 긴 여정중 2013년 개성공단지원단장(2013년)이 돼 개성에 진출한 중소기업들과의 애환을 함께 하기도 했다.

2013년 4월 개성공단이 중단돼 그들과 협상의 돌파구를 찾아 노력했고, 9월 재개되었으나 2016년 2월 폐쇄되었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결국 개성공단을 재개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참으로 안타깝다.    

어릴 적, 머리맡에 있던 부친의 먹물을 잠결에 목말라서 마셨던 기억이 있다. 그것이 이유였을까?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막혀 움직이지 않을 때, 먹을 갈아 마음을 다스리고 붓을 들어 각오를 다졌다.

하얀 화선지 앞에 욕심을 내려놓고 먹물에 비친 내 모습을 성찰하며 붓끝처럼 부드럽고 날카롭게 남북관계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본다.

미병성재 고금상책(弭兵省財 古今上策)!

우리는 스스로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평화는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 모든 국가 지도자들의 공통된 목표가 있다면 평화속에 국가구성원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다.

북송(北宋)의 재상 여몽정(呂蒙正, 944~1011)은 미병성재 고금상책(弭兵省財 古今上策), 즉 “전쟁을 그치게 하고 재물을 절약하는 것이 고금의 상책이다”이라고 했다. 서독의 수상으로 독일통일의 초석을 놓았던 빌리 브란트 또한 “평화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평화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미병성재 고금상책 (글씨 : 서호)
미병성재 고금상책 (글씨 : 서호)

전쟁의 불안한 그림자를 지우고 남북이 함께 평화롭게 잘 살아보자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지표('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때로는 더디고 멈춰선 듯 보이지만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결코 중단돼선 안된다.

그것이 남과 북은 물론, 동북아 주변국들도 함께 잘 사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이 출범해 2004년 생산에 들어가면서, 남북합작 공단으로 남북간 평화와 화해협력의 전진기지가 됐다.

중단된 개성공단을 재개하는 것이야말로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를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튼튼한 민족 경제와 동북아 번영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개성공단은 반드시 재개돼야 하고, 우리의 중소기업들이 더욱 많이 진출해 중국과 러시아 대륙으로 나가는 교두보를 형성해야 하겠다.

돌이켜보면, 나의 공직생활은 화선지 위에 먹물을 머금은 글씨와 닮았다. 때로는 흩뿌려진 먹물 방울처럼, 때로는 흐릿하게 번진 글씨처럼, 때로는 힘있게 내리긋는 필획처럼 변화무쌍했다.

붓을 들지도 못한 채, 흰 여백처럼 빈 시간도 있었다. 미완의 남북관계에서 아득하지만 저기 희미하게 보이는 평화의 한반도를 위해 오늘도 붓을 든다.

글 : 서호(전 통일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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