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김태완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의로 잘 알려진 편작은 전국시대 채나라 사람이다. 편작이 유랑하던 중 죽은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산 자의 안색을 띠고 있는 시신을 보고는 침을 놓고 약을 쓰자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다. 이 소문은 전역으로 퍼졌다.

채나라 환공은 편작이 자기 나라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는 포고문을 내 채나라로 불러들였다. 귀국한 편작은 궁에 들어가서 환공을 보자마자 폐하는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병이 피부에 있을 뿐이어서 치료하시면 나아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환공은 이 말을 듣고 불쾌한 나머지 의사란 자들은 다 그렇다. 아무 병이 없음에도 병이 있다고 해 사람을 현혹게 하고 의술이 높다는 소문을 내려고 한다.” 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10여 일이 지나 편작은 약을 들고 환공을 찾아갔다. 편작은 환공의 안색을 살펴보고 폐하의 병이 이미 근육 안으로 퍼졌습니다.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병증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환공은 화를 냈으며 편작을 응대하려 하지 않았다. 10여 일이 지나 환공의 병세를 우려한 편작은 다시 궁에 찾아갔다. 그러나 환공의 안색을 본 편작은 곧바로 궁을 떠나고 만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환공이 사람을 시켜 편작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병이 골수에 박히면 고칠 수가 없습니다. 환공의 병은 이미 골수로 들어가서 치료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다음 거짓말처럼 환공은 온몸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제야 편작을 찾아 나섰지만 이미 채나라를 떠난 뒤였다.

공사를 불문하고 사람의 일에는 잘못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고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편작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휘질기의(諱疾忌醫 : 자신의 병을 덮고 고치려 하지 않다)’는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알고서 스스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역설한다.

공공조달의 경우, 계약상대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때는 계약해제, 계약보증금의 몰취, 부정당업자 제재 등 사인간의 거래보다 강하고 다양한 제재를 부과한다. 예컨대, 발주기관이 입찰 당시 특정한 규격을 제시하며 그 충족을 요구했을 때, 입찰에 응하는 자는 규격의 이행가능성을 사전에 확인해야 하고 계약상대방이 돼 규격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는 책임을 져야 할 기본적인 의무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만약 발주기관이 제시한 규격 자체에 결함이 있어 그대로 제품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성능을 충족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경우에도 불이행에 관한 책임을 업체가 부담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이는 입찰에 응하는 자가 규격대로 계약을 이행할 수 있는지를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는 발주자의 입장과 충돌하는 것이기도 하다.

발주기관 A는 규격서와 견본을 제공하면서 특정한 성능의 물품을 만들도록 했다. 계약상대자가 된 업체 BA가 제공한 규격서 그대로 물품을 제조했지만, A가 요구하는 성능은 도저히 충족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B는 계약금액에 달하는 금액을 추가로 지출하며 성능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엔 규격과 성능이 불일치한다는 문제를 여러 차례 제기하고 규격의 수정을 요구했지만, A는 규격의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B의 기술 부족으로 성능에 미달한 것이라고 하며 계약을 해제하고 부정당업자 제재를 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입찰에 참여하는 자가 규격의 이행가능성을 사전에 확인해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계약불이행의 원인이 계약상대자가 미처 예상할 수 없는 규격의 하자에 따른 것이라면 책임은 발주자에게 있다라고 해 계약 해제와 부정당업자 제재가 모두 위법이라는 판결을 했다. 계약의 일방 당사자인 발주자에게도 온전한 기술자료를 제공해야 할 선행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공공조달 영역에서도 기술적으로 놓칠 수 있는 규격 등 기술자료의 하자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으며 그러한 경우에도 계약불이행의 책임을 만연히 업체에 지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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