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나눔 칼럼] 조수영(경희대학교 미디어학과 교수)
애플·인텔 등 민감한 사안 개입
주목도 높아져 리스크이자 기회

화제성 마케팅 도구로 활용 금물
사회담론 다각화에 기여 바람직

조수영(경희대학교 미디어학과 교수)
조수영(경희대학교 미디어학과 교수)

최근 미국에서는 애플, 인텔, 나이키, 이베이, 스타벅스 같은 기업들이 동성혼인 합법화, 총기 규제 강화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 정치 사회적으로 논쟁적 쟁점에 개입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7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해 미국 153개 기업이 반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이제 단순 사회공헌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기업이나 기업 CEO가 그들의 사업영역을 넘어서 사회적 이슈에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행동을 CSA(Corporate Social Advocacy)라고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현실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논의가 시작된 개념으로, 국내에서도 유명인들과 일부 기업에 의해 실행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인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CSV(creating shared value)는 오랫동안 활발히 진행됐으며 이에 대한 공중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CSA는 아직 국내 공중이나 기업에 낯선 개념이다. 기업이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하고 특정한 문제에 직접 입장을 밝히고 개입하는 것은 해당 이슈에 대한 의견이 다른 소비자를 잃을 위험이 있고,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기업으로서 CSA는 큰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정치 과정에 대한 기업의 기여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으므로, 특정한 정치 사회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특정 정당이나 기관과 이해관계가 결부돼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기업 경영에 제약이 많았던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우리 기업들의 정치 사회적 발언 및 행동은 암묵적으로 금기시돼왔다.

한편, CSA는 의견이 같은 소비자의 충성도와 사회적 주목도를 높임으로써 이윤 창출 효과를 이룰 가능성도 있기에 위험이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중심으로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에 따라 물건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가치소비가 주목받고 있다. 국내 남녀 1041명을 대상으로 한 ‘2020 소비 트렌드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약 52%가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부합하는 브랜드를 더 이용할 것이라 응답했으며, 14개국 140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2017 Earned Brand 조사에서도 57% 이상의 소비자가 기업의 정치·사회적 쟁점에 대한 입장을 고려해 구매나 불매를 결정하겠다고 응답했다.

과거, 기업에 요구됐던 정치·사회적 중립성은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 증대와 진화된 소비자 인식과 함께 점차 변화하고 있다. 기업 활동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책임이 높아지면서 기업은 이제 경제적 주체를 넘어서 중요한 사회적 주체로 주목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의 활동 영역이 글로벌화 되고 다양한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대중과 직접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지면서 그 파급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최근 서구의 공중들은 기업이 단순 사회공헌 차원의 사회문제 해결을 넘어 논쟁 가능성이 있는 공공 이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며 사회변화에 앞장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디어의 진화로 언론을 넘어 조직과 공중이 직접 목소리를 내기 쉬운 환경이 됐고, 한국 사회도 일상에서 민주화의 성숙을 경험하면서 침묵과 복종이 아닌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것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 실제로 행해진 CSA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순 없지만, 이러한 문화적, 사회적 변화와 소통 채널의 다변화를 고려해 볼 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정치 사회적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같은 의견을 공유하는 공중들과 연대하는 현상을 종종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CSA는 기업이 대중의 관심과 언론의 화제를 유도하기 위한 기업 마케팅 도구로 쓰이면 안 된다. 더불어 자신들에게 충성도가 높은 소비자를 형성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경제적이고 이기적인 전략에만 머물러서도 안 된다. 이제 소비자는 어떤 기업이 진정성 있는 기업인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정성을 가장하고 있는지 쉽게 분별할 수 있다.

기업이 CSA를 실행하기로 했다면 시민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책임 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업 문화와 철학에 맞는 이슈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 담론의 다각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CSA는 바람직한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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