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주·작가
편의점주·작가

담배 광고 노출 시설물 철거 동의서’.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KT&G(담배회사) 직원이 놓고 갔다며 알바생이 건넨 서류 한 장. 내용인즉, 우리 편의점에 설치된 담배 광고물을 모두 철거할 테니 동의해달라는 문서다.

배경은 이렇다. 4개월 전 <중소기업뉴스> 지면을 통해 고충을 호소한 것처럼, 전국 편의점 유리창을 모두 반투명 시트지로 도배해 가리는 중이다. 외부에서 편의점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 내부에 있는 담배 광고가 외부에서도 보인다는 이유로 보건복지부에서 강제한 행위다. 만약 앞으로 외부에서 담배 광고가 보이면 벌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별한(?) 편의점이 있다. 아예 유리창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른바 전면 오픈 매장이라 부르는 편의점이다. 36524시간 열려 있으니 출입문마저 없다. 우리 편의점이 그렇다. 무슨 그런 편의점이 다 있냐 싶겠지만 옥내(屋內)에 있는 편의점 가운데 그런 점포가 더러 있다. 굳이 유리창과 출입문이 필요 없는 것이다. 이것이 화근이 됐다. ‘붙일 곳이 없으니 반투명 시트지로 가릴 수 없다. 무척 당황했다. 마치 전 국민에게 염색을 명령했는데 대머리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꼴이다.

제도와 법규를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맞다. 악법도 법이다. 하지만 제도와 법규가 생겨난 배경을 살펴보자. 편의점 유리창을 가려 내부 담배 광고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비흡연자(혹은 흡연자)의 흡연 욕구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없는 유리창이라도 만들어 시트지를 붙여야 할까? 실제로 우리 편의점 점장은 이참에 임시 출입문을 하나 만드는 건 어떨까요?” 하는 제안을 했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단속을 피하려고 필요도 없는 유리창과 출입문을 만들어야 한다니.

담배 광고물을 그냥 철거하면 되지 않소?”라고 물을 분들도 계실 것이다. 편의점 내외부 광고는 모두 재산이다. 당신이 오늘 편의점에서 보았을 캔맥주 하단에 부착된 광고 스티커 하나에도 몇천 원 ~ 몇만 원 광고비가 지급된다. 누군가에게는 푼돈일지 몰라도 전국 편의점 점주들에겐 바로 그것이 가족과 직원을 먹여 살리는 원천이다. 담배 광고물 또한 그렇다. 적게는 매월 20만 원, 많게는 100만 원까지 광고비를 받는다. 편의점 한 달 전기요금과 맞먹는 거액(!)이다. 서민의 생계를 철거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른바 규제라는 것의 성격이 그렇다. 법을 만드는 사람은 그저 일률적으로 규정을 만들겠지만, 거기에는 억울한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에 대한 구제책을 만들어주는 것도 정부의 역할 가운데 하나다. 너무도 황당해 구청에 전화했더니 보건소에 알아보란다.

보건소에 전화했더니 잘 모르겠다는 말만 한다. 공무원들이야 당연히 법에 나온 대로 한다고 하겠지만 민초들은 대체 어디에 하소연하란 말인가.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하려고 했더니 거기는 30일 동안 20만 명이 동의해야 답변해준단다. 나로서는 무척 억울한 일이지만 일개 편의점 점주의 개인적 억울함에 20만 명이 동의할 리 만무하다. 나약한 개인은 역시 세상 앞에 굴복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가짜 출입문이라도 빨리 달아야 할까?

물어물어 국민권익위 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는 중이다. 생업에 종사할 귀한 시간을 이런 일에 허비하는 것이 아깝긴 하지만 생계가 달린 일이니 이를 악문다. 코로나19로 그러잖아도 힘든데, 엎친 데 덮쳤다.

필자뿐 아니라 이런 사연을 가진 편의점 점주들이 전국에 많을 것이다. 제도의 빈틈을 발견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주무 부처의 역할 아닐까? 여전히 자영업자에게는 내 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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