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탄소중립은 中企에 고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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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탄소중립은 中企에 고난의 길
  • 중소기업뉴스
  • 호수 2331
  • 승인 2021.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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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탄소중립의 초대형 슈퍼 태풍이 거칠게 밀어닥치고 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의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는 지나치게 도전적인 것이다. 대통령의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 쓰레기 분리수거 수준의 생활 속 작은 실천을 모으면 가능한 일이 절대 아니다. 미완성의 태양광·풍력을 무작정 늘리고, 열리지도 않은 수소 시장을 꿰찬다고 될 일도 아니다.

지난 2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이 10%나 줄어든 것은 코로나19에 의한 경기 침체 덕분이었다. 이제라도 탄소중립은 국가 경제와 국민생활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탄소중립은 인류 문명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화석 연료의 전면적 포기를 뜻한다. 50만년 동안 사용해왔던 임산(林産)연료, 18세기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석탄, 20세기의 대량 생산·이동 사회를 만들어준 석유·천연가스를 모두 버려야 한다. 가능한 대안은 원자력뿐이다.

친환경 재생 에너지라는 태양광·풍력은 여전히 환경 훼손과 간헐성을 극복해야 하고, 정부가 강조하는 수소는 생산·운반·저장·활용과 국민 안전을 보장할 기술의 개발이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래 기술이다.

탄소중립과 함께 추진하겠다는 녹색성장의 정체도 불확실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과 함께 밀어붙였던 녹색성장의 핵심은 원자력과 조력(潮力)발전이었다. 원자력은 현 정부의 탈원전에 가로막혀 버렸고, 인천·강화·가로림만의 조력발전 건설도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환경성장을 함께 추구하겠다는 화려한 녹색성장은 공허한 환상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확인된 것이다. 녹색성장은 저개발국가에나 어울리는 것이라는 환경단체의 주장도 있다.

탄소중립의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전력 생산에서 화석연료를 포기하는 일부터 쉽지 않다. 더욱이 현 정부가 막무가내로 고집하고 있는 탈원전과 함께해야 한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작 하루 2~3시간 동안 간헐적으로만 가동할 수 있는 태양광·풍력으로는 결코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전문성과 책무성을 기대할 수 없는 영세 재생에너지 사업자들로 구성된 국가 전력망의 운영도 비현실적인 것이다.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수소의 생산과 전기차 확대와 일상생활의 전기화까지 고려한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전기를 이용해야 생산할 수 있는 수소와 암모니아로 다시 전기를 생산하겠다는 무탄소 신()전원은 탄중위의 기술에 대한 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일 뿐이다.

경제의 28.4%를 제조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에게 산업 분야의 탄소중립은 더욱 어려운 과제다. 수소 환원 제철은 실현 가능성조차 확인되지 않은 꿈이고, 제철 공정에서 전기로의 용도도 제한적이다.

시멘트·정유·석유화학의 연료로 사용하겠다는 폐합성수지·바이오매스도 온실가스를 내뿜는 화석연료다. 결국 우리가 현재 잘 하고 있는 제철·정유·시멘트·비료·화학·조선·자동차·반도체를 모두 포기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석유화학 산업의 원료인 나프타(납사)를 바이오 원료로 대체하고, 시멘트의 석회석을 비()탄산염으로 대체하겠다는 제안도 소가 웃을 수준이다.

지난 831일 최소한의 검토도 없이 재적의원 299명 중 109명의 찬성으로 본회의를 통과해버린 탄소중립법은 기술적으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설치될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탄소중립 실천연대’‘탄소중립 지원센터가 만들어진다. 미사여구로 채워진 당위성만 강조하고 정작 구체적인 기능·역할은 분명치 않은 행정조직의 폐해는 신물이 나도록 경험한 것이다. 기술혁신에 의해서도 어려운 탄소중립을 국민들의 실천으로 달성하겠다는 구상은 공허한 것일 수밖에 없다. 사실은 민간의 역량을 무시하는 정부 주도로 탄소중립을 밀어붙이겠다는 구시대의 낡은 방식이다.

경제력·외교력이 제한적이면서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가 국제 사회의 탄소중립 노력을 외면해버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탄소중립을 질퍽한 잔치판으로 오해하고 앞장서서 막춤을 추면서 환영할 이유도 없다. 실제로 탄소중립은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과 고통을 강요하는 고난의 길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탄소중립으로 세계의 패권을 노리는 유럽과 미국의 뒤를 요령껏 따라가는 절묘한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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