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기로에 선 전통시장, 활로 찾아라
코로나19 대유행에 폭염까지… 시장 상인 매출 반토막
정부 지원금은 미봉책, 매력적 콘텐츠 있어야 손님 발길
중기부·소진공, 내년부터 상권르네상스 프로젝트 진행
“17년간 여기서 장사했는데 이렇게 힘든건 처음이라니까.”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만난 정 모씨는 이렇게 한탄했다. 17년간 광장시장에서 빈대떡을 부쳐온 정 씨는 “시장에도 거리두기가 적용되니까 18시 이후에는 3명 이상 못모이니 손님이 더욱 없다”며 “최근에는 폭염까지 겹쳐서 손님 구경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정 씨를 비롯한 인근 상인들에게 질문해보니 점심매출은 50~60% 가량, 18시 이후 매출은 80~90% 가까이 감소했다고 한다.
광장시장은 특색있는 먹거리들이 많아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지역이지만, 코로나19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매출에도 심각하게 타격이 발생했다.
여기에 최근 낮기온이 35도를 육박하다보니 대형마트나 백화점보다 상대적으로 더운 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줄었다. 이날 기자가 둘러본 광장시장에서 의류매장은 절반 정도 문을 닫았다. 장기간 휴가를 갔다오겠다고 안내문을 붙여놓은 상점도 볼 수 있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7월 소상공인시장 경기동향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7월 체감경기지수(BSI) 32.8로 6월 보다 20.8포인트나 하락했다. 8월 전망도 45.5로 7월 전망치(71.9)에 비하면 26.5포인트나 하락했다. 소상공인 전망지수는 올해 1월 89.8을 기록하면서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7개월간 계속 내리막을 걸었다.
최근 폭염이 지속됐지만, 소상공인이 체감하는 경기는 여전히 추웠다. 같은 조사에서 올해 1월 체감지수는 35.8을 기록했다. 2월 45.8, 3월 59.2로 소폭 상승했지만 7월에 다시 32.8을 기록하면서 올해 최저치를 경신했다.
또한,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12일 발표한 ‘긴급 소상공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소상공인의 현재 상황이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소재 소상공인의 10명 중 7명은 올해 7~8월의 매출이 당초 기대보다 4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방 소재 소상공인도 10명 중 7명은 20%~60% 감소할 것으로 봤다. 또한, 수도권 소재 소상공인의 58.6%, 지방의 55.8%가 휴·폐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전통시장은 상황이 더욱 안좋다. 소진공 조사에서 7월 체감경기지수는 26.6으로 올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8월 전망은 43.4를 기록해 1월 전망(84.7)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전통시장의 경우,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 대목이 있다보니, 상인들은 1, 2월과 8, 9월에 거는 기대가 높다. 하지만, 추석을 한달여 앞둔 이날 광장시장은 예년 같았으면 추석 대목을 앞두고 분주했겠지만 매우 한산했다.
과일가게를 운영중인 김 모씨는 “평소같았으면 차례상 준비때문에 한달정도 앞두고 예약전화들이 와야하는데, 이번주는 예약전화조차 없다”고 말했다. 근처 한복가게도 사정은 비슷했다. 코로나19로 결혼식이 감소하면서 한복을 맞추는 사람들이 재작년보다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고사위기인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대책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단기와 장기를 구분해서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조언한다.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주차공간 개선, 화장실 만들기 등 쾌적한 장보기 환경을 만드는 것과 지역화폐 발행량 증가가 단기적인 대책”이라고 말했다. 지역화폐 발행량을 늘리면 해당지역에서만 사용 가능하기에 전통시장의 매출을 증가한다.
특히, 전통시장 상인들은 올 추석을 앞두고 지급이 예상되는 ‘상생 국민지원금’에 거는 기대가 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에 따르면 재난지원금의 90% 이상이 지급 직후 한달(5월2주~6월1주)간 집중 소비됐으며, 전통시장 매출은 재난지원금 지급 직후 15% 이상 증가했다. 이번 국민지원금은 지난번 재난지원금과 달리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사용이 대부분 제한되고 추석 대목을 앞둔 만큼 전통시장에서 소비되는 액수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또한 단기적인 대책일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시장에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결국 시장만의 아이템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관계자 또한 “전통시장의 지원정책은 이미 충분하다”며 “전통시장 상인들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패키지 구성을 다양화 하거나, 밀키트 제작 등 트렌드를 반영해 소비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전통시장 경영컨설팅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상인회 차원에서 많은 관심을 바란다”며 “특정 시장을 선정해 마케팅, 콘텐츠 제작 등을 지원하는 특성화시장 육성사업과 전통시장을 포함한 상권 전체를 컨설팅하는 ‘상권 르네상스 사업’을 매년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진공이 주관하는 ‘상권 르네상스 사업’은 2022년까지 전국 30곳의 상권을 선정해 지원할 계획이다. 2018년에 3곳, 2020년에는 9곳을 선정했다. 올해도 지난달 31일까지 모집을 마쳤고, 예산 범위내에서 가능한 많은 곳을 지원할 계획이다.
사업대상에 선정되면 5년간 80억원 내외를 상권 활성화 자금으로 지원한다. 지원 예산은 지역 특색을 반영한 콘텐츠 중심의 활성화사업(SW)과 인프라 중심의 환경개선사업(HW)에 활용할 수 있다.
■상권 르네상스 사업 : 도심 개발, 제조 시설 이탈 등 쇠퇴한 구도심에 ‘상권활성화구역’을 지정해 지역 상권이 자생적인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사업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