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회복과 함께 대형 조선사들은 2008년 이후 13년 만에 최대 수주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중소 조선사와 기자재 업체들은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중소 조선업종 경영실태 조사에 따르면, 업황 개선에도 불구하고 경영실적이 호전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기업은 15%에 불과했다.

이는 대형 조선사의 실적 개선이 조선 기자재 업체를 포함한 중소 조선업계 전반의 유동성 개선으로 이어지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소요되고, 지난 13년 동안의 불황으로 경영의 기초 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원자재 가격 폭등과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인력난이 겹치면서 호황을 맞이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노동 집약 산업이다. 그만큼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 조선업계 인력 규모는 과거 최대 21만 명에 달했으나 불황기를 거치며 그 규모가 9만명 수준으로 크게 축소됐다.

업종별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주52시간제 시행은 인력난을 더욱 심화시켰다. 추가 근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니 급여가 줄어들게 되고 이는 업계 내 인력 이탈을 촉발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영향으로 외국인력 유입도 단절돼 일감이 들어오더라도 일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선박 원가의 20%가량을 차지하는 후판 가격이 급등해 원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지만, 납품 단가 반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중소 조선사들은 어렵게 일감을 확보하고도 금융기관으로부터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발급받지 못해 수주를 포기하거나 계약을 취소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RG는 조선사가 계약 기간 내 선박을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할 경우를 대비해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보증이다. 그러나 오랜 불황을 겪은 중소 조선사는 재무 구조가 악화되고 신용등급 또한 낮아져 현 제도로는 RG 발급이 불가한 경우가 많고, 신규 선박 수주를 위한 보증 한도액도 부족한 경우가 다반사다. 이는 중소 조선사 경영 환경 개선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는 중소 조선사와 기자재 업체들의 자생 기반을 강화하고 업계 전반에서 호황을 체감할 수 있도록 정부의 세밀한 정책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소 조선사 및 기자재 업체를 위한 특별연장근로와 특례보증과 같은 금융 지원을 검토하는 동시에 해양진흥공사와 같은 정부 기관이 나서 납품 단가 현실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양극화 현상을 해결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오랜 불황기로 인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중소 조선업계에게는 바로 지금이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변곡점이다. ‘공명지조(共命之鳥)’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목숨을 함께 나누는 운명공동체라는 의미다. 조선업계 내 양극화 문제를 개선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모두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대형 조선사들은 협력사들과 상생을 위해 좀 더 노력하고, 정부는 세밀한 정책 대응을 통해 중소 조선사와 기자재 업체들이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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