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리 한의사의 혀로 보는 건강학]
의학적으로는 진단기준 없어
원인 몰라 방치하면 치료 요원
양·한방간 호환위한 연구 필요

언젠가 인터뷰어에게서 현대에 있어 한의학의 존재이유는 한마디로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받고 갑자기 멍해졌던 기억이 있다. 문장이 주는 뉘앙스와는 다르게 꼭 존재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질문이어서 잘 대답하고 싶었다. “한의학은 기능적 이상의 단계에서 기질적 이상으로 가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도와줘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칼럼이지만 오늘은 왠지 넋두리가 나온다. 가끔 환자에게도 이렇게 푸념을 한다. “저도 현대를 살고 있고, 한의학을 배우기 전까지는 물리, 화학, 생물 이런 현대과학을 배웠던 사람이예요. 20년을 그렇게 살다가 와서 길게는 2000년전, 짧게는 100년전 서적을 읽고 이해하려니 머리가 터질거 같았어요. 그런데 기능적 이상을 치료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라고.

한의학은 기능적 질환을 판단하는 진단의 기준이 된다. 질환은 크게 기질적 질환과 기능적 질환 그리고 심리적 질환으로 나뉠 수 있다. 충수돌기염, 폐렴 등과 같이 명확하게 원인이 있는 질병을 기질적 질환이라고 하고 기능성 위장장애, 긴장성 두통, 만성통증, 만성염증, 혈액순환장애, 이상감각 등 문제는 있는데 병명은 붙지 않는 경우가 기능적 질환이다.

다른 용어로 MUS(Medically unexplained symptoms)라고도 하는데,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증상이라는 의미이다. 나는 괴로운데 남들은 모르고 의사도 명확하게 진단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 단계에서 기능적 질환임에도 심리적 질환으로 잘못 분류되는 경우들이 많다.

의학적 기준에서는 이러한 기능적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심리적 질환으로 분류되는 것이 문제이다. 이완제, 안정제 계통의 약물치료를 받거나 삶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바꾸는 심리치료를 받게 되는데 근본치료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능적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한의학이 필요한데 음양, 기혈, 허실 등 용어 자체가 서양기원의 의학용어와 다르다보니 서로 호환이 안 되는 문제점이 있다.

그동안 많은 노력과 자본을 들여 연구를 했으나 아직 1:1로 매칭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분자생물학적인 연구도 진행됐는데 지방세포와 간에 존재하는 아드레날린 수용체 유전자인 ADRB3가 있으면 지방분해와 열생산이 저하되는 경향을 지니게 되고 이는 비기허(脾氣虛)의 경향성을 띠게 된다. 반대로 지방을 열로 전환하는 UCP1 단백질이 있다면 위열(胃熱)의 경향성을 가지게 된다.

유전인자로 기능적 진단체계인 변증(辨證)을 유의미하게 유추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기능적 질환이 기질적 질환을 일으키는 수준보다는 미시적인 단계에서 이미 병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몸에 이상을 보이면 병원을 찾게 된다. 그리고 검사 상 큰 이상이 없으면 그때부터 질병탐구를 시작한다. 닥터 쇼핑을 하거나 유튜브 같은 온라인 정보를 섭렵하지만 정작 치료에서는 멀어지게 된다. 앞으로는 이상증상이 보였는데 검사 상 이상이 없다면 기능적 이상임을 감지하고 치료를 위한 전략을 세워 보자. 기능적 이상을 치료하기 위한 길을 제시하는 내비게이션 중 하나가 설진이다.


- 최주리 한의사(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창덕궁한의원 원장)
-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제공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