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머금고 대기업 요구 수용
가격연동제 의무화 ‘발등의 불’
최저가 낙찰관행 폐지도 시급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이 보급되면서 세계경기도 회복세 국면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중소기업계에서는 우후죽순처럼 한숨이 터져나온다. 공급대비 수요가 폭증해 원자잿값이 천정부지로 올랐고, 수급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6개월여의 코로나19로 벼랑끝으로 몰린 중소기업에게 원자잿값 파동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중소기업 사정을 들여다보니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레미콘, 플라스틱, 골판지, 파스너, 단조 등 품목별로 살펴보니 이들이 원자재를 공급받는 대기업과 제품을 납품하는 대기업 사이에서 감당하기 벅찬 원자잿값 상승분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었다.

정부가 민간 기업간의 사적거래에 관여할 수 없다는 일반적 논리를 앞세우면 중소기업의 이러한 안타까운 사정은 해결책이 묘연해진다. 당사자인 중소기업이 스스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중소기업중앙회까지 협의권자로 나설 수 있도록 개선한 납품대금 조정협의 제도를 활용하면 된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거래단절을 각오하지 않고선 납품대금 조정 신청을 하는게 쉽지 않다고 한다. 신청요건 또한 간단치 않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김경만(더불어민주당 중소기업특별위원장)
김경만(더불어민주당 중소기업특별위원장)

자재값이 폭등했는데도 제품가격에 적정히 반영하지 못하면 제조기업은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데 중소기업은 왜 납품대금 조정 협의에 나서지 못하는가. 필자는 그 원인이 산업화 시절부터 고착화된 종속적 거래구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경제는 중소기업이 부품을 납품하고 대기업이 이를 바탕으로 완제품을 만들어서 수출하는 피라미드형 수직적 분업구조를 기반으로 고속성장을 했다. 성장의 중심에 대기업을 두고 낙수효과를 통해 주변 경제를 살리자는 대기업 중심주의 전략은 오랜 기간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수직적 분업구조가 장기화 될수록 중소기업의 대기업 의존도는 높아졌다. 대기업의 원가절감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에 놓인 중소기업은 혁신여력이 사라지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은 대기업의 절반도 안되고, 국내 전체 기업수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총 매출액은 대기업의 40%도 못미친다. 성장의 과실이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 사적 계약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방치되고 있다.

공정한 거래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비단 원자잿값 상승분에 대한 납품가격 반영 뿐만 아니라 거래하는 기업과의 정당한 협상이 가능하도록 중소기업에게 힘의 균형을 되찾아줘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해야할 일이다.

이를 위해, 먼저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높여줘야 한다. 납품대금 조정신청 요건을 완화하고 합리적인 가격협상을 위한 공동행위는 허용해야 한다. 급격한 원자잿값 상승시 가격연동이 작동되도록 계약체결을 의무화하는 등 법과 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한, 공공조달시장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의 대등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저가 낙찰관행을 폐지하고, 예정가격 결정시 기업의 의견을 반영하는 환류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물가가 급등하면 계약금액이 자동으로 조정되는 시스템을 만들어 정부의 행정은 효율화하고 기업이 적정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요즘과 같이 원자잿값 상승과 수급불안정 국면에 편승해 적정수준 이상으로 가격을 높이는 기업은 없는지 관련부처의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공정한 거래환경 조성을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정책을 만들고 제도를 개선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중소기업의 혁신여력이 비축될 것이다. 단순히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넘어서 이제 왜곡된 시장경제의 규칙을 바로잡는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비로소 반세기 전에 이룩했던 성장의 과실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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