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보수적인 유통기한
폐기·반품상품 날마다 쏟아져
안전 고려한 재활용방안 기대

지금은 코로나19 시국이라 뚝 끊겼지만 예전엔 가끔 강연을 나가곤 했다. ‘편의점 아저씨의 뻔()한 편의점 이야기같은 주제로. 마지막엔 많은 강연이 그렇듯 질의·응답 시간이 있는데,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팔리지 않는 상품은 어떻게 처리하나요?”

그럴 때마다 내 튀어나온 아저씨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봉달호(편의점주·작가)
봉달호(편의점주·작가)

그렇다, 폐기난 식품은 점주나 알바생이 먹는다. “그러고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네요하면서 나름의 농담을 던졌다. 이런 썰렁한 아재개그에도 하, , 하 씁쓸히 웃어주셨던 청중 여러분께 뒤늦게나마 삼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강연 요청이 드물었던 이유가 따로 있지 않았구나! 그나저나, 그렇게 억지웃음이라도 지으며 함께 눈빛을 주고받던 강의실 강연의 날은 언제 돌아올는지. 두 손 모아 코로나 탈출을 간절히 염원하자.

편의점에는 매일 숱한 폐기와 반품 상품이 쏟아진다. 폐기는 점포에서 자체 처리한다. 먹거나 버린다. 처음엔 음식을 버리는 건 죄라며 알뜰살뜰 집으로 가져와 나름의 조리법을 동원해 어떻게든 재활용해서 먹었다. 삼각김밥은 냉동해뒀다 볶음밥으로 만들어 먹고, 길쭉한 핫바는 잘게 썰어 볶음밥 만들 때 섞거나 주말에 캠핑갈 때 가져가곤 했다. 도시락은 반찬만 모아 비빔밥 재료로 삼고, 샌드위치는 속재료만 빼내 샐러드 소스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러는 것도 하루 이틀. 편의점 짬밥이 쌓이다 보면 점차 물린다. 나중에 아까워하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알바생이 식사 대용으로 먹거나 몇 개를 챙겨 가져가기도 한다. 언제든 땡큐다. 그런데 손님들 가운데 가끔 폐기 식품이 있는지 묻는 경우가 있다. 원칙상 손님에게 드려서는 안 된다. 본인은 좋은 마음에 건네는 것이지만 나중에 법률적 분쟁이 생길지도 모르는 사안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안 되는 것이다. 그래도 어찌 사람 마음이 그러한가. 어느 주택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던 때, 매일 오후에 폐기 식품을 가지러 오던 할머니가 계셨다. 없으면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가시곤 했다. 목울대가 뜨거워져 빵과 음료를 건네 드리곤 했다.

반품 상품은 과거엔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수거해갔다. 그런데 본사도 어차피 버리다 보니, 이것 또한 어느새 가맹점 소관으로 바뀌게 됐다. 일정한 반품 금액 한계를 정해놓고, 반품이 적은 가맹점에는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명칭도 반품이 아니라 재고 처리가 됐다. 어쨌든 그래도 유통기한 지난 재고는 계속 쌓여가는데, 라면이나 과자, 음료는 역시 점주나 알바생이 먹는다. 가끔 필자와 상관없는 숙취 해소음료나 안주류가 폐기 식품으로 등장한다. 그것도 다 경험이라 생각하고 먹어본다. 맨정신에 벌컥벌컥.

그렇게 10년 가까이 폐기 식품을 자체 처리(?)하다 보니 이게 전국적으로 모아보면 상당한 규모겠구나하는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된다.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환경을 해치는 행위 아닐까. 조금 거창하게 덧붙이자면,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촌 어느 곳에는 굶주리는 아이들이 많다는데, 우리는 먹지도 않고 버리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가 하는 죄스러운 마음까지 갖는다.

최근 국회에 유통기한이라는 용어를 소비기한으로 바꾸면서 기간 설정을 현실화하는 법안이 제출됐다. 우리가 식품 유통기한을 정하는 기준은 생산, 유통, 진열, 판매의 모든 조건이 열악하던 1980~90년대에 생겨난 규정이 대부분이다. 냉장트럭조차 드물던 시절에 만들어진 기준이라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짧게 유통기한이 설정된다. 그래서 낭비와 오염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많았다. 물론 건강과 안전을 우선해야겠지만 현실의 변화 역시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 전반적으로 낡은 것을 떠나 보내자는 목소리가 가득한 요즈음, 이런 것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내 배꼽 언저리로 돌아가는 것들도 그만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편의점 폐기 식품이 있냐고 손을 내미는 우리 사회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되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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