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중고 덮친 중소기업] 현장선 아우성인데 “유예 필요없다”는 정부
고용부 ‘90% 도입 가능’은 제조현장 도외시한 탁상행정
中企 “코로나 상황 극복때까지 계도기간 연장” 강력 호소

주52시가 확대 적용이 임박한 가운데 중소기업 생산현장에선 “시행 유예”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한 부품가공 제조공장.
주52시가 확대 적용이 임박한 가운데 중소기업 생산현장에선 “시행 유예”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한 부품가공 제조공장.

기업인들은 범법자가 되느니 폐업을 고려하고 있고, 임금 감소를 걱정하는 직원들은 투잡을 고민하는 상황입니다. 52시간제로 급여가 삭감돼 주조, 용접, 금형 등 뿌리산업 숙련공들이 생산현장을 떠나면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정말 뼈아픈 손실이 아닐까요? 누구를 위한 주52시간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조업종의 대표는 다음달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되는 것에 대해 인력난 때문에 사업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명했다.

정부는 지난 16일 주52시간 근로제를 유예 없이 도입하기로 발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그간 중소기업계가 만성적인 인력난에 코로나19까지 더해져 제도 도입이 어렵다는 입장을 강하게 제기해 왔다.

14일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개 경제단체와 공동성명을 내고 계도기간 부여가 꼭 필요하다며 촉구하고 나섰지만 정작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제도 안착이 가능하다며 계도기간 없이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정부 방침은 사업장 규모별로 주52시간제 계도기간 연장을 별도 적용해 왔던 형평성 문제까지 불거지는 대목이다. 그간 정부는 주52시간 시행에 앞서 대기업에는 9개월을, 50인 이상 기업에는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했다. 반면 이번 50인 미만 기업에 관해서는 별도의 준비기간을 부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의 설명은 궁색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브리핑을 통해 작년 연말 5~49인 기업의 주52시간제 계도기간은 연장하지 않는 것으로 이미 정해졌다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등 주52시간제를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이 마련됐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작은 사업체 규모인 5~49인 중소기업에게 별도의 준비기간을 주지 않은 것을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중소기업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처사다.

정부는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 단위기간을 각각 6개월, 3개월로 늘렸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충분치 않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제시한 탄력근로제의 경우 근로자 대표와 반드시 합의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선출 방법, 지위와 권한 등 관련 규정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따라서 7월 이후 현장에서 원활하게 시행될지도 미지수다.

 

제조업 44% “준비 안돼 있다

이렇듯 이번 주52시간제 확대 시행은 중소기업계 현장과 큰 괴리감이 있는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중소기업단체협의회는 16일 고용부의 발표 후 즉각 입장문을 내고 강한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많은 기업이 주52시간제를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반발했다.

중소기업계가 주52시간제 도입이 어렵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기중앙회가 뿌리산업과 조선산업 50인 미만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을 한 결과 44%52시간제 도입 준비가 안됐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기업의 27.5%‘7월 이후에도 준수할 수 없다고 답했다.

고용부가 16일 발표에서 인용한 ‘90% 도입 가능하다는 설문 결과와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고용부가 제조업과 비제조업을 합쳐 설문을 진행한 반면에 중기중앙회는 제조업을 대상으로 설문했기에 ‘90% 도입 가능 vs 44% 도입 불가능이란 결과 차이가 나타났다. 다시 말해 이는 주52시간제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큰 제조생산 현장의 어려움을 이번 제도 시행 발표에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다.

주물제조업을 하는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제조업에 주52시간제 적용이 어려운 이유는 산업적 특성 때문이라며 뿌리산업의 경우 설비 가동이 24시간 이뤄지기 때문에 상시 인력이 필요하지만 추가 채용을 통해 근로시간을 바꿀 인원은 크게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조선업, 건설업 등도 마찬가지다. 수주 물량에 따라 근로시간 변동 폭이 크기 때문에 전체 근로시간을 인위적으로 조정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임금 격차 심화도 불보듯

최근 10년 사이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지는 상황이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평균임금 비중은 200964%였지만, 2019년은 59.4%로 더 감소했다. 따라서 주52시간제 확대 시행으로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급여가 더 크게 감소하는 이른 바 임금격차 가속화도 불보듯 뻔하다는 게 중소기업계의 염려다.

52시간제 확대 시행에 따라 새롭게 적용받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총 515494곳이다. 종사하는 근로자수만 5535418명에 달한다. 이들 사업장이 당장 7월부터 주52시간제를 준수하려면 인력을 충원하고 교대제를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청장년층은 힘든 일자리를 기피하고 있다. 여기에 그 공백을 메워줬던 외국인 근로자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입국이 중단된 상태다. 제도 도입의 취지야 십분 이해해도 현장에선 인력을 구할 수 없어 공장을 멈춰야 한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올해 입국할 예정이었던 외국인 근로자 4700명 중 4월까지 입국한 인원은 400명으로 1%에 그쳤다. 지난해 제조업 분야의 외국인 근로자 입국 예정 인원은 37700명이었지만 이 중 6.4%(2437)만 국내에 들어왔다. 이와 같은 최악의 인력난 탓에 중소기업 64%가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등 생산 차질을 빚고 있는 중이다.

고용부는 이와 같은 중소기업계의 우려를 감안해 주52시간제를 위반한 기업에 대한 엄격한 감독도 당분간 하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근무시간 컨설팅 지원 근로시간 단축 기업에 대한 인건비 지원과 정책금융 우대 외국인 근로자 지원 적정 공시기간 제도화 등 범부처 지원 대책을 병행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기중앙회를 비롯한 중소기업계는 주52시간제 도입의 계도기간을 비롯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재차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7월부터 주 52시간제 위반 시에는 사업주에게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다만 바로 처벌되진 않고 신고 접수 후 최장 4개월의 시정 기간이 부여된다.

중기중앙회는 구인난과 불규칙한 주문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쉽지 않은 문제인 만큼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 확대, 8시간 추가연장근로 대상 확대 등에도 신속히 나서주기를 촉구한다최소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정상화 될 때까지 만이라도 계도기간을 부여해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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