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의 계절, 애호가들 입맛 유혹
슴슴한 국물·은근한 육향 매력적

대물림 노포들, 서울 중구에 밀집
신흥강자들은 강남일대에 포진

냉면의 계절이 돌아왔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사시사철 언제고 즐길 수 있는 음식이지만, 땀 한 줄기라도 흐르는 이 계절에 먹어야 더 맛있는게 냉면 아니겠는가. 때이른 더위에 벌써부터 유명 냉면집 앞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여름엔 냉면이라는 공식이 올해도 어김없이 통하고 있는 것이다.

냉면의 역사와 유래는 정확히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다만, 조선 후기 세시풍속집인 동국세시기의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냉면은 조선시대부터 즐겨 먹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동국세시기를 편찬한 학자 홍석모는 냉면 중에서도 특히 평양냉면을 별미로 꼽는다. 냉면과 관련해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섞은 것이라고 묘사하며 관서지방의 냉면, 그 중에서도 평양냉면의 맛이 가히 일품이라고 덧붙였다.

시간이 지나 조리법은 다소 변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평양냉면은 소위 마니아층을 형성할 만큼 매혹적인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슴슴한 국물 끝에 은근히 퍼지는 육향과 구수한 메밀향은 복잡미묘한 매력을 자랑한다. 처음부터 단번에 맛있다고 느끼기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한번 맛본 이후, 맵고 짜고 단 음식에 지칠때쯤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것이 평양냉면이기도 하다.

 

#평양냉면의 오해와 진실

이북의 대표 음식인 평양냉면이 남쪽에 전파되기 시작한 시점을 한국전쟁 이후라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료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초기부터도 당시 경성에 꽤 많은 냉면집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평양냉면 노포들은 한국전쟁 실향민에 의해 탄생했지만 말이다.

육향이 진하고 심심할수록 원조 평양냉면의 맛에 가깝다는 것도 오해다. 원래 이북의 평양냉면 레시피에는 동치미 국물이 들어간다. 깊은 풍미의 고기향과 새콤한 동치미 맛이 조화를 이루며 입맛을 끌어당기도록 했다. 비교적 높은 기온의 이남 지역에서는 동치미 맛이 이북에서와 같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자, 점차 지금과 같이 고기 육수만 사용하게 됐다는 설이 전해진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다양한 연령층 사로잡은 평냉계 전통강자와 신흥강자

서울 중구 일대에는 다수의 평양냉면 노포(老鋪)가 몰려 있다. 1940년대에 개업한 우래옥을 비롯, 1970~80년대에 개업한 필동면옥·을지면옥·평양면옥이 대표적이다.

우래옥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평양냉면집이다. 1946년 서북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한국전쟁 때 피난을 갔다가 돌아와 다시 영업을 재개하며 다시 돌아온 곳이라는 의미의 우래옥(又來屋)으로 이름을 바꿨다. 우래옥은 진한 소고기 육수로 유명한데,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원래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등 종류를 따지지 않고 넣었다. 80년대 후반 즈음에 와, “비싼 냉면에 왜 돼지고기를 쓰냐는 고객들의 불만이 자주 빗발치자 소고기로만 육수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육향이 진한 탓에 슴슴한 맛을 선호하는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다소 간이 세다고도 하지만, 반대로 평양냉면 초보자들에게는 입문 코스로 적당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필동면옥과 을지면옥 그리고 평양면옥은 일명 의정부 계열장충동 계열로 나뉘는 평양냉면의 계파를 만든 장본인이다. 의정부 계열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수한 의정부 평양면옥을 중심으로 첫째 딸의 필동면옥, 둘째 딸의 을지면옥, 셋째 딸의 본가필동면옥으로 뻗어갔다.

장충동 계열은 어머니와 큰아들에 의해 시작된 장충동 평양면옥을 필두로 둘째아들과 딸이 각각 논현 평양면옥과 분당 평양면옥을, 큰아들의 사위가 도곡동 평양면옥을 운영하고 있다.

대를 이어 가업을 물려받는 것이 낯설 것도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대를 잇는다는 자부심으로 수십 년간 운영해 온 이 노포들이 지금의 평양냉면 맛을 평준화 시키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냉면 한 그릇에 담긴 가족 경영 스토리는 평양냉면을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되기도 한다.

대대손손 이어오는 노포의 아성에 맞서, 단숨에 평양냉면 맛집으로 떠오르는 가게들도 주목해 볼만하다. 노포들이 대체로 강북권에서 시작했다면 신흥강자들은 강남에 둥지를 튼 경우가 많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 본점이 위치한 능라도는 새내기 평양냉면집 가운데 인기 있는 곳 중 하나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방문 포장하고 이후 여러 연예인들이 다녀가며 화제를 불러모았다. 강한 메밀향과 육향이 특징이다. 본점 외에도 강남, 마포, 일산, 마곡 등지에 분점을 내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강남구 논현동의 진미 평양냉면’. 이곳은 평양면옥에서 20년간 면을 뽑은 장인이 독립해 만든 가게다. 기본에 충실하다는 평을 받는다. 역시나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피양옥은 소·돼지·닭을 우려 만든 깊은 감칠맛의 육수가 일품이다.

더불어 여의도의 정인면옥’, 용강동의 청춘구락부’, 정동의 광화문국밥등이 주변 직장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평양냉면의 세대교체를 자처하고 나섰다.

 

#평양냉면 제대로 즐기기

평양냉면 좀 먹어봤다 하는 사람 중 일부는 평양냉면 먹는 방법이 따로 있다고 설명한다. ‘가위로 면을 자르면 메밀의 기가 빠져나간다’, ‘쇠젓가락으로 먹으면 맛이 변할 수 있으므로 나무젓가락을 사용해야 한다’,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겨자도 식초도 넣어서는 안된다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냉면 면을 뽑을 때부터 이미 쇠로 만든 압출기를 사용하며, 평양냉면의 원조 격인 옥류관에서도 냉면에 양념장과 겨자, 식초를 뿌려 먹는다는 내용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혹자는 평양냉면에 대한 선호도를 미식가 판별의 척도로 삼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무미(無味)일 수 있는 평양냉면의 맛을 지적 영역으로 애써 확대하고는 평양냉면의 맛을 느낄 줄 아는 내가 더 우월하다는 해괴한 결론을 도출하기에 이른다.

담백하고 밍밍한 맛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극적이고 간간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미각의 세계는 면발 자르듯 뚝뚝 자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평양냉면을 제대로 먹는 방법이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취향에 따라 조미해 먹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먹지 않는게 옳을 뿐이다.

 

- 신다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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