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리 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
최주리 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

필자는 지난해 중소기업뉴스에 식치에 대한 글을 연재한 바 있다. 이후에 문의가 들어왔다. 약용작물은 몸에 맞게 먹는 것이 중요하고, 홍삼도 아무나 먹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럼 그걸 알려면 한의원에 가야 하나요?”

, 한의사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일단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라고 답변을 주고 나서 고민에 빠졌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기에, 심지어 아파도 병원을 내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건강식품이 맞는지 일일이 물어보러 가야한다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본적인 몸 체크를 위해서 설진(혀로 진단) 연재 글을 준비하게 됐다.

지난 칼럼에서 혀는 심장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두편에 걸쳐 혀로 보는 화병, 심화를 알아보기로 하자.

조선의 14대 왕인 선조는 조선왕조실록에 화병이라는 병명을 처음으로 남긴 임금이다. 우리는 선조를 임진왜란, 정유재란 두 번의 전란을 겪으며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간 무능한 왕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구암 허준으로 하여금 동의보감을 편찬토록 한 것은 애민정신의 발로였다고 생각한다.

명종이 후사가 없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명종의 조카, 다시 말해 중종의 서자인 덕흥군의 셋째 아들인 선조가 왕위를 계승했다. 방계에서 왕이 된 최초의 임금이 된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열등감이 컸겠는가? 뒤를 봐줄만한 외척도 없었고, 자기 세력도 없이 왕이 됐는데 전란에 피난을 가면서도 선택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전란이 끝나고 6년이 채 안되던 선조 3787일의 실록에 화병이 처음 등장한다. 임진년 왜란이 일어나자 백성들을 저버리고 선조를 의주까지 피난시킨 신하들이 도리어 2품 이상으로 지위를 올려달라고 건의를 한 것이다. 선조는 피신한 본인도 이렇게 자괴감이 드는데, 그걸 자화자찬하는 신하들을 뻔뻔하다고 느끼며, 이로 인한 화병 때문에 가래가 올라와 목이 막힌다고 말씀하신다.

선조실록 3787

나는 화병을 앓는 것이라서 계사(啓辭:임금에게 올리는 글)를 보고 부터는 심기가 더욱 상하여 후문(喉門:목구멍)이 더욱 폐색되고 담기(痰氣:가래)가 더욱 성한데

화병은 한국문화에 존재하는 이라는 감정 때문에 생기는 문화결합증후군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1994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통계를 내는 자료 네 번째 판에 ‘wha-byung’이라고 한국어 발음 그대로 등재가 됐었고, 이후 다섯 번째 판으로 업그레이드 되면서 삭제됐다. 과연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 필자는 외국인은 이해 못하는 한국만의 정신질환이 있다거나, 한국인들이 유독 화를 잘 내는 민족이어서 화병이라는 독특한 병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억울한 이라는 감정과 그로 인한 질환이 유독 한국에만 있고 미국에는 없었겠는가?

한국은 분노장애를 비롯한 일련의 이런 정신질환을 정신의 문제만으로 보지 않았다. 우리민족은 뇌와 육체를 연결시켜서 육체에서 오는 정신의 문제를 화병이라고 마음과 몸, 모두의 문제임을 자각하는 통찰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억울함, 속상함, 분함 이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누구는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폭력적으로 가기도 하고, 누구는 우울해지고, 혼자 울면서 타인으로부터 숨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양상을 지니는 것은 원인이 달라서가 아니라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몸이 달라서 그렇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게 되면 두 가지 방향성으로 나뉘어져, 화병이나 분노조절장애 같은 양()적인 반응을 일으키거나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와 같은 음()적인 방향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럼 양의 범주에 있는 화와 열은 한의학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걸까? 화는 감정적인 화냄을 의미하지 않고 한의사들이 위열이, 간열이 오른다 할 때는 체온이 오른다는 걸 뜻하지 않는다. 화와 열은 장기들의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항진된 것을 말한다. 체질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은 약간의 불균형을 가지고 태어난다. 소양인은 비, , 췌장, 즉 소화기계의 기능이 다른 장기 보다 항진되기 쉽다. 그래서 정상적인불균형일 때의 증상은 추위보다 더위를 잘 타고, 자고 일어나서 바로 식사를 해도 소화가 될 정도로 소화력이 좋다. 하지만 면역상태가 안 좋아져서 비정상적인불균형으로 바뀌면 얼굴에 열이 몰리면서 상부 쪽으로만 땀이 나고 두통이나 뒷목땡김이 생기기도 하며, 잘되던 소화가 안 되고 도리어 자주 체하게 된다. 이런 경우 소화제 복용과 과식을 반복하면서 체중이 늘게 된다.

이유는 화와 열로 인해서 기체, 즉 기능성 소화불량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몸에도 음양이 있고, 병에도 음양이 있고, 식물에도 음양이 있어서 화병인 화와 열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청열(淸熱), 사화(瀉火), 보음(補陰)하는 약용작물이어야 한다.

스트레스, 화와 열로 인한 몸의 증상을 한번 알아보자. 화와 열은 흉통과 동계와 같은 심장증상 뿐만 아니라, 두통과 어지럼증부터 안이비인후과적인 출혈과 염증, 목 이물감과 체기도 일으킨다, 이렇게 화병은 마음의 병과 동시에 몸의 병으로 나타난다.

 

- 최주리 한의사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창덕궁한의원 원장)
-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제공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