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메모리 집중투자지원 필요
토종 팹리스 다수는 중소기업
강소기업 키울 통큰투자 기대

김광훈 칼럼니스트
김광훈 칼럼니스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웨이퍼를 높이 쳐들고 있는 외신을 보면서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웨이퍼는 반도체의 상징이기도 하다. 반도체 회사에 근무할 때 화학 유출로 공정을 진행 중이던 제품이 영향을 입은 일이 있었다. 그 일로 해외 고객 사들부터 피해 조사 의뢰를 받은 미국의 공인회계사를 비롯해 관계자들이 회사에 왔었다. 재판을 받는 데 법관들을 포함해 사건 의뢰를 받은 당사자들이 웨이퍼와 리드프레임이 무엇인지조차 몰라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었는지 나는 발언권이 없는 방청객임에도 불구하고 법관이 요청해 통역을 겸한 설명을 했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실 일반인들이 반도체에 대해 알 수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날 우리가 누리는 모든 문명의 혜택 예컨대 휴대폰, 자동차, 가전제품, 비행기 등은 반도체 기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첨단 무기에도 필수적인 부품이라 각국이 탐내는 산업이지만, 기본적으로 조 단위의 투자에다 기술력이 없으면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니 섣불리 뛰어들지 못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도 나름 대표적인 반도체 회사가 있지만, 게임 체인저와는 거리가 있다. 미국은 반도체의 비조(鼻祖) 답게 오랫동안 일본과 함께 패권국의 지위를 누렸지만 얼마전부터 우리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총량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반도체 제품은 메모리 제품만 있는 게 아니다. 속칭 비메모리 제품 종류도 많고 우리가 확보하지 못한 핵심 기술이 존재해 이 분야에도 집중적인 투자와 노력 그리고 지원이 절실하다.

반도체 제조 공정은 300개에 이른다는 얘기가 있고 주요 공정만 해도 60여개가 넘는다. 하지만 크게는 웨이퍼를 가공하고 회로를 디자인하는 웨이퍼 팹, 흔히 조립이라고 부르는 패키징, 제품을 검사하는 테스트로 구성된다. 이 세가지를 다하는 삼성전자 같은 업체를 IDM(종합 반도체 제조 회사), 고객의 웨이퍼를 위탁 받아 생산 및 테스트를 해주는 OSAT(외주 가공업체), 고객의 주문을 받아 웨이퍼를 제조해주는 회사를 파운더리(Foundry), 자신들은 회로 설계만 하고 이 파운드리와 외주 가공업체에 웨이퍼 제조와 패키징 및 테스트를 맡겨 완성된 부품을 판매하는 회사를 팹리스(Fabless)라 부른다. 처음엔 미국에 생기더니 우리나라에도 여기저기서 출현했다. 나를 포함해 당시만 해도 공장도 없이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게 대동강물을 판매하는 것 만큼이나 엉뚱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종합 반도체 업체로는 삼성전자가 인텔과 각축을 벌이며 정상을 유지하고 있고 외주 가공에서는 토종 기업이었던 아남산업(현 앰코 테크놀로지)30년간 세계1위 업체로 군림하다가 한국에도 진출해 있는 대만기업 ASE에 자리를 내주고 2위를 지키고 있다. 파운드리 업계는 대만의 TSMC가 규모와 기술력에서 독보적인 아성을 구축해 왔는데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맹추격 중이다.

반도체는 제조 기술력이 중요하지만, 제품의 기능을 설계하는 팹리스도 반도체의 꽃이다. 하지만 토종 팹리스 업체는 실리콘 웍스만 선전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중소기업이다. 이들 업체들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일부 상위권 업체는 직원들이 냉장고에서 언제든 간식을 꺼내 먹을 수 있게 하는 등 여러가지 복지에도 신경을 쓰지만, 대기업에 비해서는 자금, 기술 인력 확보에서 크게 열악하다. 아이디어만 가진 채 실리콘 밸리에 머물면서 하루 70달러짜리 모텔에서 동료들과 숙식을 하며 제품 개발을 하던 20대 한국계 미국인이 상장을 통해 억만장자의 꿈을 실현하는 기사를 보았다. 그가 억만장자인 투자자에게 보낸 이메일에 45분만에 답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요즘 미국 정부의 반도체에 대한 지원 의지가 태평양 너머까지 느껴진다.

모든 산업이 중요하지만, 우리 나라도 당국자들이 반도체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정책적 지원은 물론 이런 예지력 있는 투자자들로 인해 중소기업이 보다 크고 훌륭한 기업으로 속속 거듭나기를 꿈꿔본다.

 

- 김광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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