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기업의 전문화된 기술 접목
콧등살·돈설 등 희소부위 각광
삼겹살·수육 중심 식문화 대체

요즘 회식이란 말을 들어본 지 오래됐다. 5인 이상 집합금지 영향이 크지만, 그 이전에 이미 직장 회식 문화가 크게 바뀌고 있었던 까닭이다. 푸짐한 메뉴를 기본으로 하는 저녁의 거나한 회식 후에 2차 생맥주에 노래방까지 가던 문화가 이제 저물어간달까. 개인적으로 과히 권장할 만한 문화는 아니어서 사라지는 것이 전혀 아쉽지 않다. 다만, 그래도 선후배들이 고기를 구워가며 상담도 하고, 위로를 나누던 따뜻한 장점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상명하복, 수직적 직장문화가 회식 장소까지 이어지는 것이 병폐라고 할 수 있었는데 어쨌든 아쉬운 면도 있기는 하다.

내가 직장생활 시작하던 1990년 무렵의 회식은 기본이 고기였다. 소고기냐 돼지고기냐 정도의 차이가 있었는데 부서에 돈이 있으면 소고기도 더러 먹었지만, 대개는 돼지였다. 요즘 냉삼(냉동삼겹살)이 뜨면서 이 음식의 유래에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을텐데, ‘생삼’(생삼겹살)이 보편화된 것이 빨라야 1980년대 후반이었다. 생삼을 판다는 집은 뭔가 고기에 자신감이 넘친다거나 장인의 풍모가 느껴지는 전문집의 기운이었다. 구이판도 참 많이 변했다. 1990년대를 풍미한 것이 솥뚜껑이었다. 아마도, 한반도의 고기구이 문화사에서 석쇠 외에는 가장 오랜 기간 득세한 불판이 아니었나 싶다. 불판 닦는 외주업체가 성업했다거나, 아예 일회용 구이판을 쓰고 버리는 업소, 구이판 닦는 아르바이트가 꽤 일당이 높았다는 이야기는 한국에서만 있었던 정말 독특한 고기구이의 사회사가 아닐 수 없다.

돼지고기를 많이 먹었다고 했는데, 부위는 거의 삼겹살이었다. 요즘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이미 1990년대 초반에 삼겹살이 우월한 대표 부위가 됐던 것이다. 그 무렵, 항정살을 내는 집이 더러 있었는데 아주 제한된 단골을 받는 그런 숨어 있는 맛집이었다. 요즘 항정살은 대세가 돼서, 수입육도 엄청나게 들어올 지경이다. 항정살은 원래 전지 부위에 붙어 있는 쪽으로, 도축업자나 아는 그런 특수부위였다. 흥미로운 건 요즘 돼지고기 구이집은 아주 세분화된 부위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아예 작명을 하기도 한다. 눈꽃살이니 황제살이니 장미살이라고도 하는 부위를 만들어서제공한다.

돼지는 한반도에서 아주 사랑받는 육종이었으나 지금처럼 1등은 아니었다. 소는 풀을 먹이고, 닭은 놓아기르면 됐지만 돼지는 따로 잡식성의 먹이를 챙겨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인간과 먹이를 다툰다는 말도 거기서 나왔다. 요즘은 소와 돼지가 거의 서너 배의 가격 차이인데, 과거에는 의외로 비슷했다. 1900년대 초반과 해방 후 시장물가를 게시하는 옛 신문을 보면 소, 돼지의 가격이 나온다. 큰 차이가 없었다. 우리가 1970년대 이후 회식의 기본 음식으로 보았던 값싼 돼지고기는 혁명적인 외부 환경 변화 때문에 가능했다. 서양에서 사료용 콩과 옥수수 부산물이 대거 들어오면서 돼지 사육비용이 크게 줄어들었고, 기업적인 사육도 시작됐던 것이다. 돼지고기가 크게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잘 아는 국내 최대 S그룹도 용인에서 돼지 사육을 시도했던 기록이 있다.

최근 돼지 부위가 극도로 세밀해지고 있다. 이른바 뒷고기 붐이 그걸 뒷받침하고 있다. 뒷고기란 도축장에서 기술자들이 알음알음 구워먹던 부위를 이르는 통칭인데, 정육점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쪽을 말한다. 갈매기살도 원래는 1970년대만 해도 취급하는 구이집이 거의 없었으니, 뒷고기가 생소할 수밖에 없으리라. 뒷고기는 돼지 머리에 붙은 부위를 이르기도 한다. 돼지머리는 삶아서 편육을 하거나, 순댓국에 넣는 용도가 대부분이지만, 잘 정육하면 좋은 구이 부위가 나온다. 양이 적고 번거로운 부위라 기술자들이나 알고 먹었는데, 세상이 변해서 구이집의 번듯한 메뉴가 됐다. 콧등살, 볼살, 덜미살, ()항정살, 돈설() 등 희귀한 부위로 구성된다. 쫄깃하고 진한 맛을 가진 특수부위다. 돼지고기 문화는 오랫동안 잔치에 주로 쓰이는 수육, 삼겹살을 중심으로 하는 구이가 이끌어왔다. 이제는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기술이 접목되고 있다. 기술이 우선시 되는 소기업과 기술자들이 만들어낸 시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코로나가 끝나면 친구들이나 마음 맞는 직장 동료들과 특수부위로 한잔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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