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샘후 심신 달래며 낮술 한잔
이젠 코로나로 혼술족이 대세
동료와 건배할 날 머잖아 온다

예전에 한 이웃나라로 취재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나라는 낮술을 많이 마시기로 유명하다. 낮술에 대한 책도 잘 팔린다고 한다. 보통 낮술이라면 여유 있는 퇴직자나 무직자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곳에서 보니 매우 다양한 계층이 다채롭게 낮술을 즐겼다. 한 술집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여성들이 낮술을 즐기고 있었다. ‘아니, 대낮부터 술 마시는 여성이라니. 대단한 걸?’ 하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만약 한국에서 여성 혼자 그것도 낮술을 마신다면 색안경을 끼고 볼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 같다. 관습적인 면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우리의 관념에 내재된 못된 시선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시 취재기로 돌아가자. 그 여성들에게 조심스레 낮술 마시는 이유를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우리는 종합병원 간호사예요. 3교대를 하죠. 이번 주는 낮에 일이 끝나요. 그러니 워크오프(퇴근) 술인 거요. 아아, 물론 낮술을 좋아하기도 해요.”그렇게 말해놓고서는 다들 꺄르르, 웃었다. 그렇구나. 노동 술을 마시고 있던 것이었다.

예전에 즐겨 다니던 을지로의 오래된 호프집이 있었다. 그 집은 대낮에 일찍이 연다. 은퇴한 선대(先代)가 운영할 때는 아침부터 열었다고 한다. 인근에 큰 지하철역이 있는데, 역무원들이 당직 근무하고 교대할 시간에 맞아들이기 위해 개점 시간을 당겼던 것이다. 당시는 그 일대의 인쇄제판업도 아주 호황이어서 밤새 기계를 돌리고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도 밤샘 노동 후 한잔을 즐기러 왔다. 그러니, 아침술이나 낮술이 될 수밖에.

나도 한동안 밤에 일을 많이 했다. 와인 바 업무는 보통 새벽 2시나 돼야 끝난다. 정리하고 그 시간에 되면, 야간노동자들과 밤새 퍼마신 주당들이 모이는 술집이 있었다. 한 패는 노동주, 한 패는 쾌락주랄까. 심야, 새벽에 일이 끝나는 사람들도 주린 배를 채우고 술 마실 권리가 있으니 자연스레 그 방면으로 도가 틔었다. 그 새벽에 문 여는 식당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가는 곳은 속칭 동대문 패션타운이었다. 그곳은 밤과 낮이 바뀌어 있다. 지방상인들이 밤새 장을 봐서 새벽에 내려가기 때문에 새벽 2시면 상가 전체가 피크타임이었다. 당연히 현장에서 일하는 각종 일꾼들이 퇴근하는 시간은 새벽이나 아침이었다. 밥집들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을 수밖에. 심지어 야밤에는 절대 문 열지 않는 업종이 중화요릿집인데, 그 일대에는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 동네에서 유명한 생선구이집도, 닭 한 마리집도 아마도 호황의 시절에 그렇게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지 않나 싶다.

패션타운 말고도 종로쪽으로 가면 문 연 해장국집이 여럿 있었다. 당직 근무를 마친 신문사 기자들이 그날 특종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장면, 가까운 곳인 청와대 등 국가 주요시설에 근무하던 인력들이 조용히 신분을 감추고 한잔 나누는 장면(눈빛만 봐도 딱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는 게 표시가 났다), 환경미화원 등 밤샘 노동을 하는 이들이 한둘씩 자리 잡고 해장국을 열심히 드시던 장면이 생각난다. 이상없이 돌아가는 세상에는, 앞서 간호사들처럼 밤새서 일하는 특수 직종이 있다는 걸 그때 생생히 목격했다.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이런 새벽 식사, 음주 장면은 보기 힘들어졌다. 경기가 오랫동안 좋지 않아 안 그래도 보기 어려워졌던 모습이기도 하다. 심야에 일이 끝나는 직종의 사람들은 영업시간 제한으로 문 연 가게가 없으니 모여서 밥을 먹을 방법이 없어졌다.

아마도 최근 낮술 즐기는 이들이 늘었다는 건 이런 영향일까. 술 권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스트레스 푸는 한잔 술이 힘들어진 건 아쉽긴 하다. 그렇게 시절이 흐르고, 우리 삶도 정상화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살아보면 살아지게 돼 있다. 그게 인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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