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의 소송 여력 태부족
피해사실 입증도 사실상 난망
국민참여재판 도입이 필수적

박희경 변호사(재단법인 경청)
박희경 변호사(재단법인 경청)

중소기업 A는 특정기술을 사용해 B제품을 제조·판매하는 업체이다. 제품에 관심을 보이던 대기업 C로부터 제조·위탁 거래제안을 받고, 중소기업 A는 대기업 C의 요청에 따라 제안서, 제품도면, 부품도면, 레이아웃 도면, 매뉴얼 등의 기술자료를 모두 제공했다. 하지만 대기업 C는 일방적으로 계약 체결 불가 통보를 했고, 이후 중소기업 A는 대기업 CB제품과 매우 유사한 제품을 직접 제조 ·판매하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현재 중소기업 A는 대기업 C를 상대로 기술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여느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C는 국내 굴지의 대형로펌을 선임해 중소기업 A에 대응 중이다. 이에 반해 중소기업 A는 변호인 선임에서조차 어려움을 겪었다. 대기업 C가 과거 또는 현재 다수의 로펌 및 변호사들과 위임계약이 체결돼 있어 이익 충돌 우려(Conflict, 변호사법 제3111)’가 있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이고, 대기업 B와 대형로펌을 함께 상대하기가 물적·심적으로 부담스럽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이다.

중소기업 A는 어렵게 개인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대형로펌의 질적·양적 물량 공세에 소송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다. 이는 실제 대기업과 기술분쟁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대표적인 분쟁 사례이다.

이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기술분쟁은 기업 규모, 자본력, 정보력의 차이 등으로 발생하는 태생적 불평등과, 증거의 구조적 편재에서 오는 실질적 불평등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관의 판단은 소송의 대원칙인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대기업 측에 유리하게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술에 대한 정당한 가치평가 및 건전한 거래질서 확립을 위해서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기술분쟁은 실체적 진실 발견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송을 포함한 분쟁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당사자 사이의 실질적 불평등 상태를 해소하고, 당사자 간의 구조적 불평등 및 양극화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사자간의 양극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중소기업은 여전히 기술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법 위반행위의 증거는 대부분 침해자에게 편재돼 있는 관계로, 분쟁 대상인 제품 등은 이를 보유하고 있는 침해자가 지배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해 중소기업이 침해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증거에 대한 자료제출명령, 현장조사, 제품 검증절차를 신청하더라도 침해기업은 영업상 비밀 등을 사유로 주요 증거자료의 공개를 거부하거나 극히 일부의 자료만 제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피해기업이 침해사실 입증에 성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피해자가 침해사실 입증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고려해, 침해를 부인하는 당사자에게 단순부인이 아닌 구체적인 항변을 유도하는 규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지난 4일 국회 산자중기위 소위를 통과한 상생협력법 일부개정안이 도입하고자 하는 구체적 행위태양제시의무는 증거의 구조적 편재를 시정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안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재판 및 수사과정에서 실체적 진실 및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일방 당사자의 막대한 자본력과 인적 네트워크에 치우치지 않고, 당사자가 제공하는 증거자료나 정보를 법관 또는 수사기관이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마인드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고안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복수의 구성원으로 이뤄진 합의체 또는 전문가 집단에서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거친 후, 사실관계를 종합·분석하는 구조로 운영되는 국민참여재판(배심제) 도입 역시 가히 필수적이라 하겠다. 법원은 감정인 제도(민사소송법 제33), 전문심리위원 제도(민사소송법 제164조의2) 등을 통해 전문가에게 특정 분쟁상황을 분석하도록 하고 있지만, 고도로 전문화·복잡화된 기술 분쟁에 있어 실무상 1인의 전문가에만 의존하는 분석은 자의적 판단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복수의 합의체를 기본으로 하는 국민참여재판(배심제)의 도입은 당사자 간의 구조적 불평등 및 양극화를 개선하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증진하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중소기업에 있어 핵심기술은 사업의 존폐를 결정하는 본질적 구성요소이자 회사의 필수자산이다. 이를 당사자 사이의 단순 사적분쟁으로 치부하기에는 국민경제의 지속성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매우 크다할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구조적 불평등 및 양극화를 개선하기 위한 국회 및 정부기관 등의 입법의지 뿐만 아니라 제도화의 정착 및 민주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입법적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입법을 통한 제도개선 이후 이를 운용 및 적용하는 국가기관들의 적극적 법실현 의지 역시 함께 병행되길 기대한다.

 

- 박희경 변호사(재단법인 경청)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