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 때는 몰랐는데 빈자리라는 건 참 힘드네요.”

식당 직원이 휑한 식당 홀을 보면서 혼잣말 하듯이 얘기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익은 안 남아도, 그럭저럭 꾸려가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게 식당이다. 밥은 먹어야 하니까. 돈 벌기가 힘들지, 부지런하고 어지간한 솜씨만 있으면 굴러는 간다. 식당업이 레드오션인 건 맞다. 그렇기 때문에 볼륨도 크다. 다시 말해서, 시장 자체가 크니까 웬만하면 또 버틸 수 있다. 100명 중에 20등 하기는 어렵지만, 백만 명 중에 20만등 하는 건 해볼 만한 일이다. 심리적으로 그렇다. 박 터지게 싸우면서 힘들다는 치킨배달업에 그렇게도 꾸역꾸역 신규 참여자가 늘어가는 건 그런 까닭이다. 시장이 크면 중간만 가도 먹고는 산다는 뜻이다.

그런 식당업에 대위기가 온 것이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이 맞고 있는 위기인 셈이다. 사실, 나이 오십줄인 우리 세대는 힘들다고는 하지만 나쁘지 않은 시대를 겪었다. 베이비붐 시대를 물려서 태어난 사람들은 대개 밥은 안 굶었다. 대학 문도 넓어서 가려고 하는 이들은 또 갈 수 있었고, 취직할 무렵에는 대호황으로 입사해달라는 회사도 많았다. 전쟁을 겪지도 않았다. 물론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감내해야 했지만, 빠르게 회복했다. 생각해보라.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주요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괜찮은 한반도에서 태어나지 않았는가. 대기근도, 끔찍한 전쟁도, 식민지도 다 피해갔다. 해외여행을 본격적으로 다닌 최초의 세대들이 대부분이다. 나이 지긋한 세대 아래로는, 5일만 일하는 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됐고 최저임금이 국민소득을 감안하면 주요 서방국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수준에 비견되는 상황도 목도했다. 어지간하면 살아내는 데 나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는.

서방세계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로 삶의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대량살상무기가 처음으로 본격 가동된 전쟁이었다. 비행기라는 입체적 공격수단도 가동되면서 물량 중심의 전쟁, 즉 극단적인 파괴와 살상이 전선 밖의 후방까지 입체적이면서도 전면적으로 일어나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전은 과학기술의 진보를 앞당겼고, 경제적 풍요를 유럽에 선사했다. 한국도 태평양전쟁을 포함하는 대전 이후의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625전쟁을 겪었다. 서울은 완벽하게 파괴된 도시였고, 그 허무한 폐허를 사람들은 몸서리치게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는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의 좌절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친구들과 술 한 잔 같은 여유는 일찌감치 반납했으며, 가족모임은 꿈도 못 꾼다. 갑자기 결심을 하고 주말에 비행기를 타고 외국여행을 떠났던 기억 같은 건 사실인지 꿈인지 헷갈리기조차 한다. 휴가를 모아 2주짜리 외국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다는 걸 믿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정말 그런 일이 가능했어?’라고 묻게 된다. 너무도 당연했던 일상이 환상 내지는 미래의 꿈으로 변한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시중의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포스트 코로나가 더 걱정이라는 말을 한다. 일상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파괴를 딛고 새로운 시대를 건설했던 과거의 경험이 제대로 작동할지 모른다는 뜻이다. 포스트 코로나는 장기적인 문제이며, 당면한 1/4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고정비용은 그대로, 매출은 크게 줄어든 자영업, 기업의 고난이 구체화될 거라는 내용이다. 코로나로 올스톱된 여러 비즈니스 상황은 서로 연동된다. 한마디로 소비 위축과 수입 감소가 산업 전반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는 뜻이다. 정부의 각종 대책도 재원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재원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충당된다. 세금은, 벌어야 낸다는 자명한 일인데 벌지 못하고 있는 국민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판매활동이 없는데 부가세가 어떻게 발생하겠는가.

자영업, 재정 여력이 적은 중소기업들이 이 높은 파도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월급은 당장 줄 수 있을까. 봄이 오기 전에 우리가 겪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정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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