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큰 입법, 신속보완 필요... 디지털 전환·인프라 개선 지원
공공구매 中企 비중 확대 절실, 공정거래·상생문화 정착 필수

한정화(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장 / 한양대학교 특훈교수)
한정화(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장 / 한양대학교 특훈교수)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에게 어려운 한 해였다. 각종 반기업, 반시장적 규제 입법으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코로나19라는 글로벌 팬데믹 위기가 도래하면서 생존이 가장 큰 과제가 됐다.

백신이 나오고 치료제 개발이 목전에 다가오면서 이 상황을 벗어나게 되리란 희망을 갖지만, 당장은 위기상황을 견디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 지푸라기’, 영어로 ‘last straw’라는 표현이 있다. 낙타의 등에다 짐을 쌓는데, 어느 정도까지는 하중을 견디지만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가 더 얹히면서 낙타의 허리가 부러진다는 의미다. 현재 중소기업의 현실을 보면 과중한 짐쌓기 경쟁을 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허리가 절대 부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진 정치인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지난 60년간 한국 사회의 변화과정을 보면 80년대까지는 재벌권력의 성장이 주를 이뤘고, 그 후 30년간 노동권력이 성장하면서 힘겨루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립보다는 서로의 힘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충실하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중소기업에 전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임금의 이중구조가 고착화됐으며, 대기업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익성과 임금 수준으로 인해 혁신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와 인력확보가 어려운,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는 중소기업들이 많다.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재벌개혁과 노동개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나 개혁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관계와 노동시장과의 관계에서 협상력 불균형으로 인한 이중 기울어진 운동장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가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의 기업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당장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기업은 긴박한 오늘의 현실에서 생존해야 하며, 기업가정신은 모든 악조건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해결방안을 찾는 데 있다. 정부는 이러한 기업의 노력을 격려하고 성과를 실현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기업의 의욕을 저해하고 부담을 높이는 규제에 대해서는 신속한 보완 입법을 마련해야 한다. 52시간제의 부담을 경감하고, 중소기업의 상황을 제대로 살펴서 현실을 반영한 유예 기간 연장이 필요하다. 최저 임금인상에 대해서는 중소기업계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지만,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는 과잉입법이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업계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코로나19가 가속화시킨 디지털 전환의 시대의 생존전략과 함께 이를 활용해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 스스로 자기 혁신을 통한 일하기 좋은 근로환경을 만들고 노사공생의 기업문화와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가정신이란 자조와 자립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기업인의 의지와 의욕을 고취시키고, 디지털 전환과 자기 혁신의 성과 향상을 지원해야 한다. 개별기업 차원에서 하기 힘든 인프라 개선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중소기업 공단이나 밀집 지역의 보육, 교육, 주거, 교통, 문화 환경을 개선하고, 내일채움공제와 같은 장기근속에 따른 목돈마련의 기회를 확대하고, 주택마련과 보육지원을 해 소득격차를 완화해야 한다.

중소기업 정책의 중심축을 요소공급(supply-push)형에서 수요견인형(demand-pull)로 전환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창업과 성장에 필요한 자금, 기술, 인력을 공급하는 정책만으로는 성과 향상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유효 수요를 확대하는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가장 필요한 것이 공공구매 시장에서 중소기업의 비중을 높이고, 적정가격 보장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관련 새로운 사업 분야를 촉진하기 위해서 혁신 제품 구매 시장을 확대하고 현실에 적합한 정책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이 중소기업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유효 시장을 확대하고, 이를 기반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돕기 위한 패키지 지원정책의 강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의 성과를 높이려면 기업인들의 열정과 도전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는 사회적 격려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사람의 의욕과 의지는 남다른 성과를 실현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듯이 기업가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경제를 마차에 비유하자면 말이 잘 뛸 수 있도록 해야 마차가 잘 달릴 수 있다. 달리고자 하는 의욕도 없고 힘이 빠진 말에게 채찍질을 해봐야 마차가 목적지에 도달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 질서와 상생협력 문화라는 두 바퀴가 튼튼하게 장착된다면 마차는 더 힘차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기업인의 열정과 도전정신이라는 사회적 자산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면서 홀대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근로자가 잘사는 사회도 결국은 좋은 기업과 좋은 일자리가 많아져야만 가능하다는 명백한 진실에 대한 사회적 재인식이 필요하다. 내년에는 기업인을 격려하고 기업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높게 울려 퍼지고, 이에 대한 정치권의 호응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 한정화(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장 / 한양대학교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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