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대를 잇는 안경원, 나눔으로 더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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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대를 잇는 안경원, 나눔으로 더 환하게
  • 노란우산 기자
  • 승인 2020.12.03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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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식 쓰리에이안경 대표

안경은 ‘산다’가 아니라 ‘맞춘다’고 한다. 사람마다 제각각인 시력을 세밀하게 체크하여 가장 편안하게 보이는 지점을 찾아 손님에게 딱 맞는 안경을 선보이는 일. 수원 권선구에서 26년 째 한 자리를 지키며 안경 맞춰온 장영식 쓰리에이안경 대표의 사명이다.

“제 마음이 간판에 다 새겨져있어요. Ace-Credit(최고의 신용), Ace-Quality(최고의 품질), Ace-Accuracy(최고의 정확)를 추구한다는 의미로 AAA, 즉 쓰리에이안경으로 이름을 지었거든요. 믿을 수 있는 최고의 제품을 고객 맞춤형으로 정확하게 전하겠다는 약속입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늘 정갈하게 손님을 맞는 장영식 대표의 공손한 자세는 1994년 처음 안경원을 오픈했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화려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눈을 사로잡는 안경원이 속속 늘고 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꾸민다고 따라갈 수 없는 자신의 오랜 경험을 믿는 덕분이다. 새 안경을 편하게 맞춰주는 것은 기본, 부러지고 망가진 안경도 능숙하게 수선해내는 게 장영식 대표의 경쟁력이다. 수익을 따진다면 새 안경테를 권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는 손재주를 자랑하며 기꺼이 수선에 나선다. 이게 베테랑 안경사의 저력이고, 26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오며 중소벤처기업부 인증 ‘백년가게’로 선정된 안경원의 품격이다.

최고의 안경, 가장 따뜻한 안경

안경사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특별하다고 들었습니다. 눈 건강의 중요성을 체험한 후 안경에 관심을 높이게 되었다고요.

1986년 즈음, 원래 양안 시력이 1.2 정도였는데 과로로 왼쪽 시력이 0.1 정도로 뚝 떨어졌어요. 한쪽이 찌그러져 보이고 판단력까지 흐려져 자꾸 엉뚱한 곳을 짚게 되더라고요. 큰일이구나 싶어 안과에 갔더니 중심성망막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비로소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속담을 실감했어요. 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체험한 후 시력을 보완해주는 안경사라는 직업에 눈이 갔지요. 마침 친구 아버지가 안경원을 운영하고 있어서 직접 찾아뵙고 기초부터 배우게 되었습니다.

안경사가 되어 1994년, 쓰리에이안경을 창업하였습니다.

안경원을 개업했지만 초창기에는 단골 고객이 없어 힘들었어요. 가격만 물어 보거나, 안경테를 수도 없이 꺼내보고는 그냥 가거나, 막무가내로 가격을 깎으려는 고객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죠. 돌아보면 그도 다 경험으로 쌓였지만요. 그러다 안경을 잘 만들고 고치는 손재주가 전환점이 되었어요. 아무리 조제.가공하기 어려운 안경이라도 다 만들어 드렸거든요. 특히 다른 안경원에서 못 고치는 안경을 즉석에서 용접하여 다시 쓸 수 있게 해주니 점차 입소문이 났어요. 다른 곳에 한번쯤 갔다가 마음에 안 들어 다시 찾아와 줄때는 자부심이 생기지요. 그렇게 신뢰를 쌓아가며 단골이 하나 둘 늘자 저도 마음의 여유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한 자리에서 한 가게를 꾸준히 이어오기가 쉽지 않은데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느 업종을 불문하고 한자리에서 십수년을 지속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요. 특히 본인 건물이 아닐 경우 더욱 어렵습니다. 40여 년 전, 수원 시내 중심가에서 장사하는 분들의 하소연이 한결 같았어요. 장사가 잘되면 임대료를 턱없이 인상하거나 가게를 비워달라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인상 조건으로 임대를 연장한다는 것이죠. 한자리에서 사업을 오래하기 위해서는 내 건물의 내 점포를 확보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였어요. 지금의 안경원이 작기는 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대출을 받아 현재의 매장을 직접 분양 받아 개업하게 되었습니다.

첫 직업, 첫 사업이 아니라 공무원, 떡볶이 노점상, 분식 뷔페 등 안경원을 열기 전까지 거쳐 온 길이 많습니다. 다양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무원의 길을 택했지만 월급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동생들의 학자금 마련을 위해 공직을 사퇴하고 식당을 차리려했지만 자금조달이 어려워 계약금만 날리고 무일푼으로 노점상부터 시작했습니다. 과일, 오징어.쥐포, 전병 등을 두루 팔았는데 계절을 너무 타서 안정적이지 못했지요. 그러다 대안으로 어머니와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첫 1년은 좀 힘들었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은자리에서 남보다 성실하게 일하고 맛까지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매출이 급상승했습니다. 비록 노점상이지만 줄을 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을 정도였지요. 그동안 여러 업종을 경험하며 실패도 하고 성공도 맛보았는데요. 배운 점은 손님의 눈높이에 맞춰야지 시대에 너무 앞서가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 정직하고 성실하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결국 인정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식업 사업을 실패한 후에는 저의 손재주와 기술을 바탕으로 나이가 들어서도 오래 할 수 있는 사업을 고민했고, 지금껏 안경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드님과 함께 안경원을 운영중이시죠. 대를 잇는 안경원으로서 백년가게로 선정되었습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세상을 밝고 바르게 보도록 도와드린다는 사명으로 안경원을 운영하다보니 어느덧 26년이 쌓였습니다. 우주과학을 전공한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글을 쓰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꿈은 좋지만 성공하기 전까지 생활이 쉽지 않을 것을 알기에 어느 정도 자기 시간을 가지며 짬짬이 글도 쓸 수 있는 안경사를 권했습니다. 아들이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거든요.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주었더니 대를 잇는 안경사의 길을 택하더라고요. 졸업 후 다시 동남보건대학교 안경광학과에 입학했습니다. 2019년 1월 안경사 면허시험에 합격하여 지난해부터 저와 함께 안경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요. 든든한 후계자입니다.

아드님에게 선배 안경사로서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을 강조하시나요?

저나 아들이나 많은 이윤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저희가 만든 안경을 착용하고 밝고 바르게 볼 수 있게 도와 드리자는 신념으로 일합니다. 요즘 젊은 안경사들은 비싼 안경을 많이 판매해서 빨리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경원은 어떤 사업보다도 긴 안목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를 쌓아 한번 다녀간 고객이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동안 쓰리에이안경을 찾은 많은 고객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을까요?

인근 아파트에 사는 고객님이 있는데 아드님이 지체장애인이에요. 다른 곳에서는 검사도 어렵게 하고 처방을 제대로 못 받았는데 저희 안경원에서 불편하지 않게 잘 맞춰 그 후부터는 온 가족이 단골이 되었죠. 저를 치료하던 의사선생님이 단골이 된 경우도 있어요. 노안으로 수술할 때 불편해 누진다초점안경을 맞췄는데 뭔가 불편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서울에 거주하시지만 시간을 내어 저희 안경원에 오시면 편하게 맞춰드리겠다고 했죠. 정말 수원까지 오셔서 안경을 맞추셨는데요. 5년이 된 지금까지도 너무 좋아 다른 안경으로 못 바꾼다고 하십니다. 사모님과 장모님이 저희 안경의 매니아가 된 것은 물론 주위에 홍보를 많이 해주셔서 서울 단골도 많이 생겼답니다.

안경사로서 다양한 나눔 활동을 펼치고 계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인가요?

1955년 전쟁 후에 태어난 저는 배고픈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어려운 이웃이 많습니다. 과거 어려운 시절을 돌아보며 2015년 안경사들의 봉사단체인 (사)휴먼비전을 설립해 취약계층 대상 안경 지원사업, 해외 저개발국가 안경 지원사업, 청소년 시력보호 교육 등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 2018년부터는 중고생 NGO인 ‘안아주세요 사회적협동조합’을 조직해 안 쓰는 안경을 수집해 분리 및 세척 작업을 거쳐 캄보디아와 몽골 등 저개발 국가에 보내주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안아주세요’는 ‘안 쓰는 안경을 아시아, 아프리카 이웃들에게 주세요’의 약자입니다.
또 제가 관절 수술 후 다리를 절뚝이게 되면서 장애인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거든요. 휠체어를 타시는 분들은 굴절(도수)검사를 위해 검사기기의 의자로 옮겨 앉는 것조차 어려워하시지요. 수원시지체장애인협회와 인연이 있어 지난해부터 한 달에 세 분씩 장애인 어르신께 돋보기안경을 맞춰드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오래도록 가게를 지키셔야 할 텐데요.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쓰리에이안경을 한 번 다녀간 고객이라면 반드시 다시 찾을 수 있도록 기술과 신용을 꾸준히 이어가는 게 개인적인 꿈입니다. 나아가 아들이 제 기술을 잘 전수받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안경사가 되어 쓰리에이안경을 백년가업으로 발전시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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