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친구들과 술자리…멈춰버린 일상에 가슴이 서늘
사회 곳곳서 힘겨운 생존투쟁…삶의 방식 바꿔야 살아남을까

권위 있는 기관, 이를 테면 정부에서 정책집행의 중요한 경과를 설명하는 책을 흔히 백서(白書)라 한다. 영어의 화이트페이퍼를 번역한 것인데, 원래 영국의 정부 발간 보고서의 표지가 하얗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백서는 아무 보고서나 백서라 부르지 않는다. 외교백서, 국방백서처럼 굵직한 사안의 대국민, 대의회 보고에 해당된다.

아마도, 2020년의 코로나 사태로 정부에서 백서를 낼 것이다. 그만큼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국민이나 정부를 엄청난 고통에 몰아넣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장은 어폐가 있다. 백서란 사태가 정리되어야 쓸 수 있는 것이니, 과연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의 시간 뒤에 가능한 일일 테니까.

당장 지난달 30일부터 2.5단계 집합제한 명령이 내려졌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정부로부터 무슨 명령을 피부로 느낄 일이 별로 없었다. 이제는 정부의 실존을 명확하게 느끼고 사는 시대가 된 셈이다. 매일 아침 누구나 오늘 확진자가 몇 명인가 확인한다.

정부 브리핑을 제일 먼저 보는 세상이다. 집합제한 명령은 그야말로 우리 삶의 방식을 간단히 바꿔놓았다. 동창회도, 회사 회식도 취소됐다. 결혼식도 온라인으로 중계되고, 오랜만의 안부를 물으며 피로연 식사를 나누는 광경도 볼 수 없게 됐다. 이런 얘기를 동료에게 했더니 그는 “3단계 조치 이상까지 있다던데 고작 이것도 못 참고 그러느냐고 핀잔을 들었다. 그렇구나. 더 한 상황도 생길 수 있구나. 우리가 그럭저럭 누리던 가족의 저녁식사, 간단한 여행, 친구들과 삼겹살 술자리 같은 일상의 기쁨이 이렇게 제한되고 중지될 수 있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러고 보니, 유럽은 올 초 코로나가 막 창궐할 때 완벽한 집합금지 명령이 있었다. 남부 유럽 나라들은 더운 날씨 때문에 2층 이상에 발코니가 있다. 그것도 유리 등으로 막혀 있지 않고 공기가 잘 통하게 뻥 뚫려 있다. 당시 뉴스에는 이 발코니에서 이웃들과 소통하는 영상이 자주 나왔다. 이웃의 이름을 부르고, 무엇인가 외치고, 악기를 들고 나와 연주를 하거나 노래를 불렀다. 고통스러운 시기에도 그들의 낙천성이 부럽기도 했다. 견디기 힘드니 즐기자는 태도였으리라. 그때 우리는 그것이 먼 나라의 이야기로 생각했다. 실제 먼 나라의 일이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우리도 이 시기를 못 넘기면 3단계 이상으로 갈 수 있다. 병원이나 마트 외에는 갈 수 없으리라. 물류 이상으로 유럽처럼 마트에 물건이 동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자영업자, 대개는 식당주인 친구들의 하소연이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다. 빚내서 가게 옮긴 게 지난봄인 녀석은 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없으니 이제 망했다. 가게를 다시 내놓아도 들어올 사람이 없다. 망해도 그대로 안고 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직원들에게 무급휴직을 실시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친구의 아픔도 있었다. 한 친구의 이런 얘기는 폐부를 찔렀다.

이번 사태는 삶의 방식이 바뀐다는, 바뀌어야 살아남는다는 신호 아닐까. 우리의 계획이란 건 사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저 변하지 않고 영원하리라는 전제에서 시작된 것인데, 이런 역병에도 휘청거리고 있다고.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지 누구도 알 수 없을거야.”

그렇구나. 앞으로 우리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모든 계획은 의미가 없구나. 그 친구들과 몇 년 전에 친목계를 부었다. 유럽의 식문화 체험 목적이었다. 돈이 꽤 많이 모였다. 감히 가보기 어려운 고급식당도 한 군데 넣고, 오래된 도시의 재래시장 순례도 넣었다. 제법 비싼 호텔도 하룻밤, 비행기도 상대적으로 비싼 대신 편안한 우리나라 국적기로 알아보자며 웃고 떠들었다. 그것도 다 꿈 같은 일이 되었고, 당장 직원 월급을 줄 수 있을지, 줄 수 있다면 다음 달도 가능할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모두 살아남을 수 있을지, 불과 몇 달 전에 누리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다. 여러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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