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이라는 사명이 아직은 낯설 수 있습니다. 옛 현대상선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올해 3월 열린 44차 정기주주총회 때 바꾼 사명인데요. 연초에 간판을 잘 바꾼 덕분일까요. HMM이 모처럼 적자의 늪에서 탈출하면서 국내 대표 해운사로서의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HMM은 최근 공시를 통해 2분기 영업이익 1387억원을 올려 흑자전환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HMM 안팎으로 상당히 고무적인 발표입니다. 지난 20151분기 이후 무려 21분기 만에 거둔 흑자였기 때문이죠. 2분기 당기순이익도 281억원을 기록해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매출은 13752억원으로 전 분기(13131억원)보다 621억원가량 늘었습니다.

배재훈 HMM 사장도 모처럼 웃게 됐습니다. 20분기 연속 적자를 털어낸 원동력은 배 사장이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공격적 투입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 덕분입니다. HMM2018년 당시 정부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에 따라 국내 조선사와 3조원 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계획을 체결했습니다.

올해부터 2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현장에 속속 투입하는 중인데요. 지난 4월 인도받은 24000TEU급 컨테이너선 알헤시라스호를 앞세워 9척이 유럽, 아시아 등의 항로에 운행 중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운임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1 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를 말합니다.

세계 최대 규모 컨테이너선인 알헤시라스호는 519621TEU를 싣고 유럽으로 출항했습니다. 선적량 기준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어 출항한 오슬로호도 최대 선적량이 넘는 19504TEU를 선적했습니다. HMM이 운항한 주요 선박이 만선을 기록해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사실 선박 운영비용의 30%가 연료비입니다. 연료비 부담이 큰 상황에서 HMM 입장에서 대형 선박을 도입하면서 개당 컨테이너 운송비용을 낮춰 수익성을 높일 수 있었던 겁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제유가가 하락했다는 점도 실적 개선에 한몫했습니다. 현재 서부텍사스산원유(WTI)4월 저점을 찍은 후 8월 들어서도 40달러 선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유가 시대에 선박회사의 연료비 이점은 어느 때보다 높을 때죠.

그간 한국을 대표하는 해운사업은 침체기였습니다. 2016년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한국 해운업 전망도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HMM 분위기가 되살아나면서 전반적인 시장의 기대치도 덩달아 상승 중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HMM의 뱃머리를 잡고 있는 배재훈 사장도 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기회를 찾고자 노력 중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배재훈 사장은 해운 경험이 없는 CEO입니다. 배 사장은 고려대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지난 1983년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해 LG반도체에서 10년 넘게 미주지역법인장을 지냈습니다. 이후에는 LG전자 MC해외마케팅(스마트폰) 담당 부사장을 맡아왔습니다.

그런 그가 2009년부터 물류회사인 판토스(옛 범한판토스)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을 맡아오면서 물류에 대한 전문성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죠. 그가 HMM으로 옮겨탄 시기는 지난해 3월이었습니다. 막상 적자기업인 거대 HMM을 운항하려고 보니, 이곳저곳 손볼 데가 많았겠죠. 최근 1년여 시간은 배 사장에게 체질개선을 위한 승부를 띄운 한해였을 겁니다.

어느 기업이나 턴어라운드(실적 반등)의 순간은 결코 쉽게 오지 않습니다. 배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사장실 직속 라인으로 비상상황실을 운영했습니다. 그가 매일 숙제처럼 한 일은 국제유가 등락과 항로별 문제 상황을 점검하는 일이었죠. 손바닥을 들여다 보듯, 전 세계에 운항 중인 배들의 시시각각의 이슈를 챙긴 겁니다.

이번 2분기 극적 턴어라운드를 자축할 때는 아닙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적으로 장기화 국면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항공업과 마찬가지로 해운업도 악재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세계 무역 규모는 거의 30% 가량 줄어들었습니다. 물량이 줄어드니, 운임료도 5% 가까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하반기 HMM은 글로벌 대형 선사들과 실적경쟁에 다시 나서야 합니다. 다른 경쟁사들도 대형 선박 도입에 가속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탑재된다면, 다시 한번 내년 바닷길에는 치킨 게임을 방불케 하는 해운사들의 경쟁이 벌어질 겁니다. 배재훈 사장이 하반기에도 쾌속 항진을 할지 궁금합니다.

 

- 장은정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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