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위령공에는 유교무류(有敎無類)’라는 유명한 성어가 실려 있다. 이 성어는 몇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먼저 말 그대로 가르침에는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있다. 무려 3천 명에 달하는 제자를 가르친 공자의 교육관에 잘 들어맞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공자의 문하에서는 부귀한 자와 가난한 자, 신분이 높은 자와 비천한 자,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차별 없이 배움을 얻었다. 그것을 잘 말해주는 것이 술이에 실려 있는 육포 한 묶음 이상의 예물을 갖춘 사람이라면 나는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공자의 말이다. 단지 최소한의 예물을 갖추는 예의와 열의만 있다면 누구든지 제자로 받아들여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가르침을 받으면 모두 동등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현명해질 수 있고, 도덕성이 부족한 사람도 선해질 수 있으므로 애초에 부류나 선악을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지 고려할 것은 그 사람의 자질과 성향에 맞게 가르치는 것이다. 실제로 <논어>에서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일률적인 가르침이 아닌, 그 사람의 수준과 성향에 맞게 가르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논어> ‘선진에 실린 고사다.

자로가 좋은 말을 들으면 곧 실천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아버지와 형제가 있는데 어찌 듣는 대로 행하겠느냐?”라고 대답했다. 염유가 역시 같은 질문을 하자 공자는 들으면 곧 행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공서화가 어찌 같은 질문에 답이 다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염유는 소극적이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했고, 자로는 지나치게 적극적이므로 한발 물러서게 한 것이다.” 공자의 교육은 천편일률적인 지식의 가르침이 아니라 각 사람의 부족함을 채워 높은 수준의 사람으로 다듬어가는 것이다.

한편 <논어> ‘자로를 보면 공자가 좀 더 실용적인 관점에서 배움의 필요에 대해 말했던 것이 실려 있다.

선한 사람이 백성들을 7년 동안 가르친다면, 전쟁에 나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서 전쟁을 하게 하면 바로 그들을 버리는 것과 같다.” 평화주의자인 공자가 했던 말로는 다소 의외인데, 그 당시 전쟁이 일상이었던 현실을 감안했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가장 좋으나,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반드시 백성을 가르친 후에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자신의 책 <맹자> ‘고자상에서 더 실감 나게 실례를 들어준다. 노나라에서 신자를 장군으로 삼아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자 맹자는 이렇게 경계했다.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전쟁에 내보내는 것은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不敎民而用之 謂之殃民).” 백성의 희생을 담보로 전쟁을 하는 것은 결과에 상관없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치열한 경쟁과 험난한 환경에서 기업을 하는 것은 마치 전쟁과도 같다. 그 전쟁을 지휘하는 사람은 경영자이며, 전선에서 싸우는 사람은 임직원들이다.

이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바로 교육이다. 맹자는 제대로 키움을 얻는다면 자라지 못할 것이 없고, 키움을 얻지 못하면 소멸해버리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교육을 통해 다져진 정신력과 탄탄한 실력은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힘이 되고, 기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기반이 된다.

 

- 조윤제천년의 내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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