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경(한양대학교 파이낸스경영학과교수)
전상경(한양대학교 파이낸스경영학과교수)

시스템을 덮치는 외생 충격(exogenous shock)은 고통과 함께 새로운 균형을 유도한다. 갑작스럽게 닥친 코로나 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변화의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코로나는 인류에게 현재의 방콕 경제’(stuck-at-home economy)라는 단기균형을 유도했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과거 이미 예견됐던 생활 디지털화’(life-digitalization)을 더욱 속도감 있게 앞당겨 장기 안정 균형으로 자리잡게 할 것이다.

정부의 지원대책은 단기충격의 악영향으로부터 경제주체들을 보호하는 제한된 수준의 현상유지(stand-still)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우리의 벤처중소기업들 중에는 생활 디지털화라는 새로운 운동장에서 성공 잠재력이 강한 선수들이 많다. 우리는 선수들의 운동장에 널린 돌부리들을 체계적으로 제거해 주는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현재 임시방편으로 활용하는 규제 샌드박스의 행정부처별 실적을 보면, 정보통신, 과학기술, 금융 부문의 실적이 압도적이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면 생활 디지털화 환경에 필수요소인 이들 부문에 불합리한 규제가 널려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한다. 왜 유망한 기술, 제품, 서비스가 현재의 넓은 운동장에서 뽐낼 수 없고, 구석 모래놀이터에서만 선보여야 하나? 얽히고 설킨 그물망 법규정 때문이다.

우리의 국회의원들은 어느 한 분 빠짐없이 다들 지혜로운 분들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봉사할 강한 의욕을 지니고 계시다. 하지만 새로운 법안을 제안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임무라 당연시 하지 마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대한민국은 이미 법규정 과잉상태이다. 새로운 법안 제안보다 더 중요한 일은 현재의 법률에서 불합리한 조항들을 찾아 없애주는 것이다.

 

얽히고 설킨 그물망 규제 탓

벤처중기 성공잠재력 위축

불합리한 조항 제거 급선무

 

국회가 제정한 하나의 법률과 행정부처의 부속 시행령은 공공기관들의 수많은 규정지침’, 그리고 시행세칙으로 이어진다. 법률과 행정명령, 시행령이 법규정의 다가 아니다. 감사원은 큰 의미 없는 단순 지적과 권고까지 감사보고서에 담아서 구색을 갖춘다. 다원화 사회의 개별 주장을 침소봉대한 언론 기사도 지면에 실린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위원들도 기관 경영과 연관된 다양한 지적을 한다. 이들 모두는 공적 부문의 각 영역에 촘촘한 업무 매뉴얼을 탄생시켜 법규정 과잉을 유도한다.

과거의 규정들은 모두 그 당시 존재의미를 지니고 탄생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다. 그러니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양한 규정들이 존재한다.

행정부서와 공공기관 등 개별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이들 규정들을 수정하거나 폐지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관성(classical inertia) 원리 때문만이 아니다. 이들 규정들은 모두 국회, 감사원, 언론, 경영평가 등 힘있는 외부기관들의 지시와 비난을 수용하기 위한 내부의 개선노력으로 탄생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회의원이 정부부서와 공공기관들의 국정감사에서 새로운 개별적인 지적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정부부서의 시행령과 시행세칙, 그리고 공공기관의 규정과 지침을 검토해서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조항들을 제거해 주는 것이다.

또한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감사원의 과잉 감사, 불필요 감사, 구색 갖추기 감사를 점검해 주시기 바란다. 역량 있고 성실한 우리의 젊은 공무원들과 공공기관의 인재들이 주어진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성실히 일하다가, 혹시라도 간과하고 놓친 조항이 있거나 정해진 절차를 생략한다면, 이들의 미래는 암울하게 된다.

그러니 이들은 이미 규정의 노예가 됐다. 규정집 암기와 그에 따른 기계적 정책집행과 심사에 익숙해져 있다. 변화된 환경에 맞는 정책대안이 있어도 위로부터의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 위로부터의 지시가 있어도 내부 규정에 어긋나면 그 규정의 변경절차를 거친 후에 움직일 수밖에 없다. 과잉의 법규정들은 생활 디지털화 시대에 여기저기 큰 돌부리로 성장해 있다.

 

- 전상경(한양대학교 파이낸스경영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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