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은 사람들의 무지(無知)를 세 종류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본래의 무지다. 그다음은 위대한 성인들이 자각한 무지다. 이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편력한 다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바로 소크라테스가 깨달았던 무지의 지(無知之知)’의 통찰이다.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으로 가장 현명한 무지에 속한다. 또 한 종류의 사람은 본래의 무지에서 벗어났지만 무지의 지에는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다.

파스칼은 이들을 두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모든 것을 그릇되게 판단하는 가장 문제가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식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으면서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만났던 소위 아테네의 지식인들이 바로 이들이다.

파스칼이 무지를 셋으로 분류했다면 공자는 지식인의 종류를 넷으로 구분했다. <논어> ‘계씨에 실려 있는데,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생이지지(生而知之), 학이지지(學而之知), 곤이학지(困而學知), 곤이불학(困而不學)가 그것이다. 먼저 생이지지는 날 때부터 아는 사람이다.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경지로 성인(聖人)에 속한 사람이다.

파스칼이 말했던 무지의 지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 학이지지는 배워서 아는 사람을 말한다. 배움의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 높은 학문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다. 곤이학지는 곤란에 처하고 나서야 배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열심히 배우는 사람이다. 곤이불학은 공자가 최하의 사람이라고 꾸짖었던, 곤란한 지경에 처해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곤경에 처해도 다른 사람을 탓하고, 환경을 핑계 댈 뿐 스스로 노력해서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는다. 결국 곤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 공자를 두고 성인(聖人),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라고 우러렀다. 하지만 <논어>를 읽다 보면 공자 자신은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는 아는 것이 없다고 고백했던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술이에서는 나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해 힘써 그것을 구한 사람이다라고 했고,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다자한에 실려 있는 글이다. 이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잘 분별한다. 그리고 학문에 있어서 겸손하고 솔직한 태도를 가진다. 이러한 공자의 철학을 잘 말해주는 구절이 있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논어> ‘위정에서 제자인 자로를 가르친 말이다. 자로는 건달 출신의 제자로 용맹함은 뛰어나지만 학문과 수양에서는 부족한 일면이 있었다. 그래서 공자는 학문에 임할 때는 아는 체해서도, 무모하게 나서서도 안 된다는 것을 경계했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을 반드시 갖춰야 학문에 진전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또한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도 강렬하다. 하지만 잠깐의 자존심을 위해 아는 체를 하게 되면 나중에 더 큰 곤란에 빠질 수도 있다. 만약 나의 지식이 부족하고 가진 것이 모자라면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자기 혀에게 모른다는 말을 열심히 가르쳐라.” 유대 속담에 있는 말이다.

 

- 조윤제 천년의 내공저자
일러스트레이션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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