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중소기업연구원 혁신성장연구본부장)<br>
박재성(중소기업연구원 혁신성장연구본부장)

지난 7월 시작된 반도체 주요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가 8월 한 달을 뜨겁게 달궜다. 지난 2일 정부의 종합대응계획 발표를 시작으로 관계장관회의 등 대책 발표가 잇달았고,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다는 연구기관이나 공공기관이라면 앞다퉈 분석과 대책, 전망을 발표하기에 분주했다. 

7월부터 ‘이슈 폭염’이라 할 만큼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지만, 소재·부품·장비에서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달리 이번 사태에서 무엇을 각성했는지에 대한 냉정한 성찰은 부족한 듯하다. 

지난 수 십년 간 소재·부품·장비의 종속성을 탈피하겠다는 시도는 몇 차례나 있었는지, 무수한 시도에도 실패한 것인지, 아예 시도조차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 왜 그랬는지,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 과거와 달리 일본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인지, 무수한 주장 속에서도 정작 이 같은 물음의 답은 찾기 어렵다. 이는 비단 필자만의 느낌은 아닌 듯하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영향을 파악하고자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1만3000개 제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중 4200여개 기업이 피해가 있다 또는 없다 여부를 밝히는 유효한 응답을 제출했고, 그 중 260여개 기업만이 피해가 있다고 응답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라 귀사는 영향을 받습니까?’라는 간결한 질문에 대한 응답이므로 피해가 있다는 응답은 실질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인식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4200여 개 응답 중 260여 개, 6.2%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대체적으로 일본의 수출 규제가 매우 큰 위험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내 기업, 내 사업이 이 위험에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른다는 의미다. 

위험은 세 가지 경로다. 소재·부품·장비 조달 애로에 따른 직접적 영향과 기업이 속한 공급망상의 최종 수요기업이 생산을 감축하는 데 따른 영향, 이를 파급효과라고 하자. 내가 속한 공급망은 이상이 없다 하더라도 다른 공급망에서 문제가 발생해 결국 내가 속한 공급망도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는 것, 이를 전염효과라고 하자. 공급망상의 중소기업은 만일 이 기업이 공급망에서 다섯 단계 아래 기업이라면 네 단계 아래 기업을 쳐다보고, 네 단계 아래 기업이라면 세 단계 아래 기업을 쳐다 보고, 다시 세 단계 아래 기업이라면 그 위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즉 수요기업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대다수 중소기업에게는 최대의 변수다. 그러나 수요기업의 정책은 불확실하고 이 정책이 과거와는 어떻게 다를지, 이는 더더욱 불확실하다. 대다수 중소기업이 뭔가 피해가 있을 것 같은 느낌에도 정작 구체적으로 피해를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상적인 대-중소기업 생태계라면 아마도 이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수출 규제와 같은 외부적인 충격이 발생한다면  최종 수요기업은 공급망 상의 중간 허브 역할을 하는 기업들에게 이러저러한 시나리오 하의 대응 전략을 설명하며 어떤 형태의 조치를 주문할 것이다. 이어서 이 중간 기업은 다시 그 아래 기업들에게 어떠어떠한 역할을 당부할 것이다. 

이로써 생태계의 적응과 진화가 시작된다. 이는 수요기업과 산하 납품기업이 서로 이익과 미래를 공유하며 신뢰함을 전제로 한다. 

수요기업이 구매를 확정하지 않으면 새로운 소재나 부품 개발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애써 새로운 부품이나 소재를 개발했다 하더라도 정작 수요기업이 외면하거나 핵심 기술만을 빼 가는 현실에서는 이익과 미래를 공유할 수 없다. 

이익과 미래를 공유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지 못한다면 경쟁력 있는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육성은 한낱 공염불이다. 어떻게 해서 이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미래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 국내 최대기업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이 2017년 21.5%일 때, 288개 1차 납품업체의 영업이익률은 불과 8.6%였다. 이 수치는 모든 것을 대변한다. 이 수치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가? 이것이 새로운 생태계 구축의 관건이다. 또한 이번 일본 사태의 궁극적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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