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는 보편적으로 풍광이 빼어나다. 그런 만큼 인파에 시달려야 하는 고달픔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는 한적하다는 이점이 있지만 개발이 덜 돼 있어서 불편함이 따를 수도 있다. 둘 다를 만족하고 싶다면 잠시 움직이면 된다. 조용한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인근에 있는 아름다운 여행지는 따로 찾으면 일석이조의 유용한 여행이 될 듯.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 갯벌이 살아 있는 생태계의 보고인 한적한 영광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본다. 조개, 게 등을 잡아보고 모래집을 지으면 어느새 붉은 해는 바다 속 깊이 떨어진다.

전남 영광에는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에 맞춰 새로 조성된 ‘백수 해안드라이브’길이 있다. 이 해안길이 생기고 나서는 영광여행이 한층 즐거워진다. 영광읍내에서 가마미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길도 아름답지만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심리. 백수 해안길은 이번이 세 번째 방문. 계절도 가장 적기인 듯하다. 가는 길에 바라보는 바다 빛은 회색 빛으로 맑지 않지만 간간이 바다를 향해 피어난 꽃의 향연이 봄바다와 잘 어우러진다. 거기에 꽃잎이 넓은 분홍빛 해당화가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여름이 다가옴을 알려주고 있다.
해안길은 길용리 원불교 성지에서 홍곡거리 해안을 끼고 장장 18km나 이어지고 있다. 조업을 하는 배들이 빼곡하게 바다를 메우고 있다. 무엇을 잡는지, 맑은 날은 오가는 배들로 바다 위는 부산하다. 바다 너머로는 법성포 뒤켠에 세워지는 거대한 기념관. 지난번 들렀을 때보다 많이 진척된 것을 볼 수 있다.
가는 길 초입에 만나는 모래미 해수욕장. 백수읍 삼두구미(三頭九尾)의 하나인 구수리 구시미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에서의 모래찜질은 신경통에 크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흰 백사장이 길게 이어지는 그곳에 개인 리조트가 온 터를 다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물놀이를 못 즐길 이유는 없다. 마침 바다 속에는 두 사람이 고기잡이에 여념이 없다. 사진 찍기 위해 잠시 차를 세우는 동안 너댓명의 남자들도 그물질을 감상하고 있다. 그들은 그물질이 익숙한지 대번에 숭어새끼(모치)를 잡는 것이라고 귀뜸해준다. 모치를 둥기리라고 부르는데 무안에 가면 모치젓을 별미로 내놓는 집도 있다.
계속해서 해안길을 따라간다. 인적이 뜸한 해안 길에서는 차량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언덕 위에 자리잡은 어촌 마을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간간이 바닷가에 펼쳐지는 섬이 드러나고 길가엔 해당화 꽃이 아름답게 피어났다. 조수간만에 의해 갯벌이 드러나는 모습도 아름답고 바닷물이 출렁이는 것도 괜찮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 전망대가 있다. 비탈진 길을 갈아 밭을 일구고 사는 사람들의 손길도 부산하다.
이 길에서 낙조라도 만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의 여행이 될 듯하지만 해가 지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이르다. 그렇게 달려나오면 염산면이다. 염산면은 이름에서도 ‘소금 향내’가 난다. 이곳에는 아직도 천일염을 만드는 염전이 허다하다. 삶이 힘들어서인지 소금창고에 있는 사람들은 신경이 예민해 있다. 줌 렌즈로 일하는 작업을 열심히 찍고 있는데 멀리서도 이런 말이 들린다. “우리 텔레비에 나온당께. 사진 찍으려면 말이나 하고 찍지”한다. 작업장까지 나가서 양해를 구할 수 없는 거리임에도 도둑이 제발 저린 듯 금세 카메라를 치우고 돌아 나온다. 예전 군청 직원과 함께 왔을 때도 그들은 사진조차 찍지 못하게 했다. 부안의 염전보다 규모는 크지만 비닐로 덕지덕지 만들어 놓은 소금창고가 왜 이렇게 비교가 되는 것일까? 그들의 고달픈 삶을 잠시나마 이해해보기로 한다.
돌아 나오는 길에 두우리 해변가에 들르기도 한다. 갯벌체험장이라는 팻말이 있지만 물이 차 들어와 갈매기 떼만 우루루 몰려 먹이 다툼을 하고 있다. 함평땅으로 달려나오는 길에 설도 포구에 들러본다. 설도 포구에 있는 횟집에 취재 온지가 벌써 몇 년이 흘렀는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비가 한없이 내리던 어느날 난 횟집 사람과 길고도 험난한 인생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이제는 정작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눈인사를 마친다. 파도가 치던 막다른 자그마한 포구. 지금은 젓갈 집과 횟집 그리고 포장마차가 조금 더 들어서 있다. 포구는 작아도 사람이 많은지 부산하게 배가 움직인다. 모든 삶을 이해하고 살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백수 해안길에서 만난 파르르 바람에 떨리던 분홍빛 해당화가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자가운전 : 서해안고속도로-영광나들목-영광 방향 23번 국도-영광읍-백수 방면 844번 지방도로(3.5km)-만곡에서 우측 군도로 진입-천정저수지-원불교성지-모래미에서 77번 국도 이용-봉남-염산면.
■별미집과 숙박 : 법성포구에 있는 일번지 식당(061-356-2268)은 소문난 맛집이다. 보통 4인기준이라서 2사람 상차림은 현저하게 차이가 나므로 유의. 또 영광읍내의 동낙식당(061-351-3363)에서도 푸짐한 백반상을 받을 수 있다. 신라식당(061-353-4839)은 간단한 백반집으로 이용하기 좋다. 모래미 해수욕장앞에 있는 모래미리조트(061-353-6472)는 바닷가 카페다. 숙박은 영광읍내의 신라호텔(061-353-3333)과 관광호텔 아리아(061-352-7676)등을 이용하면 된다. 또 설도포구의 설도횟집이나 포장마차를 이용하면 된다. 이곳에는 천일염으로 만든 ‘백해젓’을 팔고 있다.

◇사진설명 : 피빛처럼 붉은 해당화 너머 작은 고두섬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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