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동윤(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후배는 번듯한 대기업에 다녔습니다. 박차고 나와 창업을 했습니다. 출근 첫날, 어머니가 아침상에서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돈 벌 생각 마라, 대신 직원들 절대 굶기지 마라.’ 창업 후 1년 동안 거의 일이 없었답니다. 빚을 내 직원들 월급을 줬습니다. 대신 자기 집에 돈 한 푼 가져갈 수 없었답니다. 그사이 후배는 이혼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제법 큰 회사가 됐습니다. 

기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닐 겁니다. 적어도 SK는 그렇습니다. 돈은 수단에 불과합니다. 어떠한 가치를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SK가 추구하는 사회적가치가 그러합니다. 그래서 항상 응원했습니다.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 최종현..... 기업을 통해 보국(保國)을 실천한 선대 회장님들입니다. 전자, 자동차, 조선, 통신 등등. 모두 그들 손을 거쳤습니다. 정부도 아낌없이 지원했습니다. 근로자는 묵묵히 손을 보탰습니다. 권리를 요구하지 않았고,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우리 회사가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세계 11위 경제대국이 됐습니다. 선대 회장님이 돈으로 만든 가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꺼냈습니다. 괘씸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불화수소가 뭔지 모릅니다. ‘반도체 나라’ 국민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 전문가들은 화해를 주장하거나 ‘극일’을 외칩니다. 그사이 회장님과 이재용 부회장은 동분서주했습니다. 갑론을박에 끼어드느니 조용히 회장님들을 응원했습니다. 현장에서 부대끼는 고통은 크리라 짐작했습니다. 그리고 무지한 ‘반도체 나라’ 국민의 미안함 때문입니다. 

한국 중소기업도 불화수소를 만듭니다. 일본 제품보다 품질이 떨어집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푸념을 보탰습니다. 진즉에 대기업이 함께했다면 품질도 나아지고, 수출규제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을 거라고. 아무튼 어딘가에 그런 중소기업이 있었던 겁니다. 괜히 고맙고, 뿌듯했습니다. 근데 회장님이 한마디 하셨습니다. ‘품질에 문제가 있어 쓸 수 없다.’

수출규제와 관련해 정부는 ‘극일’이 전략인가 봅니다. 높은 분들은 정치 압박을 통해 경제 문제를 풀고자 합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그러하지요. 그래도 근본적인 ‘극일’은 해당 품목의 국산화입니다. 정부는 해당 산업의 특별근로를 연장하고, 내년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자 합니다. 근데 너무 요란한 듯합니다. 화해를 위한 ‘압박용’이 아닐까 의심이 듭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반도체가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큽니다. 국산화는 시간도 제법 걸립니다. 국산화가 지체되면 국가경제에 타격이 큽니다.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대기업 중심의 집중 투자가 불가피해보입니다. 중소기업이 함께하기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대기업은 물론 정부도 투자와 지원의 효율을 생각해야 합니다. 중소기업이 참여할 여지는 좁아 보입니다. 회장님의 그 한마디는 그 여지마저 지워버렸습니다.

그래도 같이 가야 합니다. 선대 회장님들의 업적은 눈부십니다. 정부의 대기업 중심의 선택과 집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덕분에 우리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더 기대는 구조가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평등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불평등 때문에 더 고통받을 수 없습니다. 

SK가 추구하는 사회적가치는 무엇일까요. 돈 많은 부자의 자선사업은 아닐 겁니다. SK는 얼마 전 사회적가치연구원을 확대했습니다. 회장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회문제가 해결되는 속도보다 사회문제의 발생 속도가 더 빠른 복잡한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이 경제적 가치만 추구해서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중소기업의 손을 잡는 것이 사회적가치의 실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 오동윤(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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