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동길(숭실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축구는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믿기 어려운 새로운 역사를 썼다. 흔히 우리는 어떤 경기든 결과에 초점을 맞춰 평가하지만 중요한 것은 도전의 과정이다. 생사를 가르는 경쟁에서 중요하지 않은 게임은 없지만 특히 세네갈과의 8강전은 감동적인 드라마 그 자체였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최후의 1분까지 싸워 이뤄낸 역전극은 짜릿했다. 

축구든 다른 어떤 스포츠든 기술과 체력과 조직력을 갖춰야 이긴다. 끝없는 경쟁과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게 스포츠다. 기업경영도 스포츠와 다를 바 없다. 경쟁에 이기려고 남보다 더 많이 뛰고 더 많은 땀을 흘린다. 기술에서 밀릴수록 더욱 그렇다. 

주52시간 근무제는 더 일하고 싶고 더 뛰고 싶어도 못하게 막는 제도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 다시 말해 일하는 시간을 줄여 가족과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 제도의 목적이라 했지만 근무시간을 단축하면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현실은 이러한 기대와는 딴판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3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산업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어든 근로자는 불만이다. “돈이 없는데 저녁이 있는 삶보다 저녁거리를 살 돈이 중요하다. 일을 더하게 해 달라”는 근로자의 목소리는 제도의 허점을 말해준다. 어느 중견기업은 기존 인력으로는 납기일을 맞출 수 없어 지난해 7월 주 52시간제 시행에 앞서 직원 116명을 신규로 채용했는데 근무시간 단축으로 급여가 줄어들자 야근할 수 있는 기업으로 113명이 빠져나갔다고 했다. 

기업은 기업대로 생산차질과 납기지연 등 경영의 어려움이 쌓여간다. 줄어든 임금 보전을 놓고 노사 갈등을 빚는 곳도 적지 않다. 당초 목적대로 고용이 늘어나지도 않고 근로자도 기업도 만족하지 못하는 제도를 그대로 둔 채 부작용을 보완할 탄력근로·선택근로제 도입은 미루고 있다. 이런 허술한 정책도 있는가. 

제도를 계속 시행하려면 탄력근무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늘리지 못할 까닭이 없다. 연구직이나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근무시간 규제를 왜 해야 하며 업종의 특수성을 왜 고려하지도 않는가. 

내년부터는 50인 이상 기업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돼 중소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 연구 인력은 물론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일하는 시간까지 줄이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연구도 덜하고 일할 시간도 줄어드는데 무슨 수로 기업을 성장시키며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 한국의 경제성장은 인간이 이룩한 기적이라고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누구도 할 수 없을 만큼 해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모든 게 부족한 중소기업에게 대기업만큼만 일하라는 것은 더 이상 성장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이은 주52시간제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아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근무시간 단축은 4차 산업혁명 진행으로 그렇지 않아도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는 추세인데 이를 더욱 촉진시킬 것이다. 그러면 일자리는 더욱 줄어든다.

1970년대 영국은 국민의 근로의욕 저하와 강성노조 때문에 기업경영이 어려워지고 기업투자는 저조해져 실업자가 양산되는 상황에 빠져 이른 바 ‘영국병’을 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처 수상은 강성노조와 싸워 영국병을 치유했다. 지금 우리는 ‘영국병’을 빼닮은 ‘한국병’을 앓고 있다. 

이를 치유하지 않고 경제를 살릴 길은 없다. 최후의 1분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사력을 다한 축국선수들처럼, 뛰지 않고 경제와 기업을 살릴 묘약은 없다. 더 많이 일하는 걸 막고 덜 일하라고 하는 제도를 고집하며 경제와 기업을 살리겠다는 건 억지다.

 

- 류동길(숭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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