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이슈]SK, 배터리 전성시대 열까?

“지금까지 연습게임이었다면, 본 게임은 이제 시작입니다.” 지난해 5월이었죠.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이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던 발언입니다. 그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제대로 베팅을 하겠다는 목표로 이렇게 일성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김 사장의 호언장담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였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1%도 안됐기 때문이죠. 고객사라고 해도 현대·기아차를 제외하곤 독일의 다임러밖에 없었습니다.

업계에서도 마이너 주자인 SK이노베이션이 김준 사장 말대로 선두권으로 단숨에 부상하기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죠. 올해 3분기 시장 점유율을 들여다봐도 시장의 변화가 딱히 감지되지도 않았습니다.

1~9월까지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은 파나소닉이 24%로 1위를, 뒤를 이어 중국 CATL와 BYD가 각각 20%, 12%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의 LG화학과 삼성SDI는 각각 8%와 4%로 4위와 6위를 기록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1%대 점유율로 10위권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업계의 판도가 뒤바뀌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폭스바겐그룹이 전기차 플랫폼 기반에 준한 전략적 공급자로 SK이노베이션을 선정한 겁니다. 폭스바겐은 전 세계 완성차 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달리는 기업입니다.

이 회사의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게 된 거 자체는 어마어마한 호재가 아닐 수 없죠. 폭스바겐은 2025년까지 연간 300만대 이상 전기차를 판매하겠다고 목표를 잡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들도 SK이노베이션과 마찬가지로 중장기적으로 굵직한 물량을 확보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SK이노베이션이 폭스바겐과 함께 한다는 사실은 업계에서 큰 화제거리입니다.
왜냐하면 폭스바겐은 이른 바 ‘디젤 게이트’ 사태 이후로 기업 이미지 변신을 위해 전기차에 올인을 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폭스바겐과 전기차 배터리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이 만나 서로 윈-윈하는 모양새가 갖춰졌습니다.

앞으로 SK이노베이션은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선두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톱5’까지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최근까지 공개가 된 공급물량을 들여다보면, 대략 300GW 수준의 전기차 배터리를 양산할 걸로 보여집니다. 이걸 수주액으로 환산하면 40조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선두주자인 LG화학이 70조원 정도의 수주액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SK이노베이션이 단숨에 5위권으로 진입하는 결과입니다.

이번 결과만 봐도 김준 사장의 공이 가장 커 보입니다. 김준 사장은 이번 계약을 따내기 위해 과감한 선투자를 밀어 붙였다고 합니다. 전기차 배터리 업계와 같이 초기 설비투자가 많이 소요되는 산업일수록 먼저 수주를 따내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략입니다. 그래야 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대비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김 사장은 ‘선(先)투자 후(後)수주’를 추진하면서 올해 배터리 사업에만 1조7000억원 이상 썼습니다.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있어 ‘규모의 경제’를 이뤄낸 점은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시장에서 배터리 구매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인데요. 이를 안정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공급자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협상력이 높은 쪽은 공급자인 배터리 생산업체입니다. 김준 사장의 전략이 확실히 맞다면 SK이노베이션이 쏟아부은 대규모 투자는 몇년 안에 엄청난 황금알을 안겨다 줄 것으로 기대가 모아집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신영미
- 장은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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