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동윤(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벌써 2년이 흘렀다. 촛불은 광장을 달궜고, 민심은 정권을 흔들었다. 국민은 적폐 청산을 명령했다. 바야흐로 적폐 청산의 시대이다. 하나, 둘 적폐를 쓸어내고 있다.

중소기업의 적폐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적폐는 ‘피터팬 신드롬’이다.
중소기업 지원(정책)은 차고도 넘친다. 지원은 위험을 회피하기 마련이다. 나랏돈을 쓰고도 성과를 못 내면 담당 공무원은 여의도의 서슬 퍼런 질타를 받아야 한다. 중소기업 지원이 성과가 날 만한 기업을 선호하는 이유이다. 그러다 보니 맨날 받는 기업만 지원을 받는다.

뭐든 지나치면 독이다. 지원은 달콤하다. 많이 먹다 보니 살이 오른다. 이내 중독 현상을 보인다. 덩치가 커지면 대기업이 돼야 한다. 근데 마약은 끊기 어렵다. 어른이기를 거부한 채 아직도 취해 산다. 책임과 역할을 거부하는 중소기업이 많다는 의미이다. 이게 바로 ‘피터팬 신드롬’이다.
‘피터팬 신드롬’만 적폐로 본다면,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왜 촛불을 들었을까? 촛불이 원한 건 최순실도, 박근혜도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심각해졌다. 사회 불평등은 경제 불균형에서 비롯했다.
함께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는 벌어졌다. 성장이 급해 그 격차를 그냥 지나쳤다. 성장을 거듭하며, 가진 자는 돈뿐 아니라 경제권력까지 거머쥐었다. 움켜쥔 경제권력으로 부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제 불균형은 시장 실패가 아니다. 시장 실패는 시장이 효율적이지 못해 자원 배분에 실패한 상황이다.
우리는 경제 불균형의 책임을 시장에 떠넘기고, 방치했다. 그런 탓에 중소기업의 지원은 늘어만 간다. 그래서 중소기업 지원은 보호·육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 불균형은 정부 실패로 보는 것이 맞다. 정부는 1960년대부터 산업정책을 추진했다. 산업화에 필요한 재원은 너무 부족했다. 효율적 활용을 위해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그 중심에 대기업이 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위한 보조역할을 수행했다. 이를 수직 계열화라 부른다. 계열화 촉진법까지 만든 게 정부다.

그렇게 완성한 경제순환의 꼭짓점은 대기업이었다. 성장을 이끈 것도 대기업이고, 분배의 시작도 대기업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을 누렸지만, 불평등을 떠안았다.
결국, 가진 자는 대기업이고, 덜 가진 자는 중소기업이다. 기업의 격차는 근로자 임금 격차로 이어졌다. 이게 경제 불균형이다. 어디서 일하느냐에 따라 사회 인식이 달라졌다. 이게 사회 불평등이다. 끼리끼리 뭉치고, 대립했다. 이게 사회 분열이다. 마침내 사회 분열은 촛불이 됐다.

문재인 정부의 시대적 사명은 적폐 청산이다. 적폐의 시작은 산업정책에 있다. 산업정책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적폐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럴 마음을 없는 듯하다. 보통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꺼내 드는 카드는 부동산 활성화와 개별소비세 인하다.
지난 7월 정부는 승용차 개별소비세를 인하했다. 전형적인 산업정책에 기초한 카드다. 승용차가 많이 팔려야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매출도 늘어난다는 관점이다. 적폐의 시작이 산업정책인데 산업정책에 얽매여있다.

이제 중소기업이 경제의 중심이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성장과 분배의 꼭짓점 역할을 하도록 정책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
선택과 집중의 대상은 중소기업이고, 여기서 일하는 근로자이어야 한다. ‘피터팬 신드롬’에 집착해 중소기업 지원에 시장의 원리를 섣불리 도입한다면, 숲을 보지 못하는 꼴이다. 근본적인 것부터 바꿔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시작하는 경제순환이 완성될 때 진정한 적폐가 사라질 것이다.

- 오동윤(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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