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윤재(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한 중견기업의 L 회장은 요즘 기업할 맛이 안 난다고 한다. 기업경영 30여년에 지금과 같은 답답함은 처음 겪는 일이라고 한다. 기업을 키울 맘이 안 생기고 그냥 현상 유지나 했으면 하는데 그마져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생존모드다.

중견기업이 이 정도면 수백만에 이르는 영세한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은 그야말로 생존절벽에 직면케 된 듯하다. 오죽하면 자영업자들이 생업도 제쳐두고 비를 맞으며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했겠는가. 사업이 부도날까 두렵고 폐업하면 당장 생활고에 직면하게 될 것 같은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 경기의 어려움은 최근 많은 통계가 대변해주고 있다.  
9월초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올 2분기 성장(GDP)기준은 0.6%에 머물러 지난 1분기 성장률(1%)의 반토막에 지나지 않았으며, 투자, 소비, 고용 등 대부분의 거시지표가 악화됐다.

수출도 불안하다. 반도체 등 특정품목을 제외하면 실적이 좋지 않다. 향후 경기전망에 대한 기대심리를 나타내는 기업실사지수(BSI) 및 소비자신뢰지수(CSI)도 하락했다.

그럼 향후 하반기에는 개선될 것인가? 기대한 것만큼 개선되지 않을 것 같다. 대내외 경제여건이 안 좋다. 최저임금 급상승 및 근로시간 단축 등의 충격이 상당기간 누적적으로 나타날 우려가 있다.  또한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파편이 우리나라 수출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고, 미국의 추가적인 금리인상이 내수에 끼칠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런 대내외 경제상황이 미래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 가중시키고 있다. 앞으로 사람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 맬 것이며, 노후대비를 위해 ‘똘똘한 아파트 한채’를 장만하기 위해 분양시장을 기웃거릴 것이다.

요즘 대기업들은 사들였던 빌딩을 매각하기에 바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간판격인 S사, H사, K사 등도 보유 부동산을 처분하고 있다고 한다. 현금 흐름이 좋은 대기업들이 왜 금싸라기 같은 땅이나 건물을 처분하려고 할까? 미래의 경기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기업성장 전략 대신에 생존모드로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는 생물과 같다. 주변 환경이 불리하게 변할 때 살아남기 위해 온갖 생존전략을 구사한다. 세렝게티 초원의 수많은 동물들은 긴 가뭄이 닥치면 생존을 위해 번식도 멈추고, 위험을 무릅쓰고 먹이 찾아 모험에 나선다.

중소기업들도 혹독한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 않던가. 오히려 불황에 더 성공하는 기업들도 많다. 불황에 대처하기 위해 사람들은 가성비를 중시하고, 1인가구 세대수의 증가, 모바일 거래 활성화 등의 환경을 이용하면 새로운 틈새시장이 만들어지고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불경기는 혁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기업가정신이나 혁신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필자에게 놀라운 혜안을 준 패션그룹의 C 회장이 생각난다. 그가 기업경영 현장에서 체득한 지혜는 ‘반 발짝 혁신’이었다. 반 발짝 혁신이야 말로 중소기업에게 필요한 혁신이란 것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한 발짝 혁신’은 쉽지 않을뿐더러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서 시장이 성숙될 때 까지 버틸 힘(자금)이 없어 실패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늦게 진입하면 시장을 빼앗겨 혁신의 열매가 없다. 나름대로 기업경영 현장에서 터득한 탁월한 혁신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에서도 새로운 분야에서 반 발짝 혁신이 원활히 일어날 수 있도록 규제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불확실한 경영환경 하에서 차별적인 반 발짝 혁신으로 불경기를 이겨내고 살아남아 도약하는 중소기업이 많이 나오길 기원한다. 혹한기에 살아남은 중소기업이 우리나라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며 고용창출의 주요한 원천이 될 것이다.

- 이윤재(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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