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호(경북대학교 명예교수)

2019년 적용될 최저임금이 발표되던 날, 가정용 세탁기의 핵심부품인 방진기구와 도어 록 소프트웨어 등을 생산·수출하는 S사의 C회장을 만났다.

그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진작 생산기반을 해외로 옮겼어야 했는데…”하면서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환율 요인(원화의 평가절하)을 제외하면 수출 중소기업에게 유리한 여건이 하나도 없다고 큰 한숨을 쉬었다.

국내기업(개인 포함)의 해외 투자금액은 2017년에 436억9600만달러(약 44조원)로 이 통계를 처음 만든 1980년 이후 역대 최고치라 한다. 외국인의 한국 투자 보다 우리 기업의 해외투자가 월등 많다.
투자 총액에서 뿐만 아니라 기업규모별 해외투자 현황을 보더라도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

2012년 이후 5년 만에 대기업의 해외투자 금액은 38%로 늘어난 반면, 중소기업의 경우는 무려 3배로 급증할 만큼 중소기업의 해외진출 러시가 목격된다.
지난해 1년간 해외에 공장을 세우거나 설비 증설 등을 한 중소기업이 1884개로, 5년 전 보다 60.3%(700여개) 증가했다. 그 사이 국내 투자는 3분의 1 이상 줄어들었다.

물론 중소기업의 해외진출 확대는 국제경쟁력이 강화되고 국제화가 촉진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는 국내 일자리가 오히려 해외로 빠져나가고, 경제성장이 위축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소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데에는 다양한 까닭이 있다. 특히 인건비가 싼 곳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시장을 넓히기 위해서 나가는 경우도 있고, 거래하는 모기업과 동반 진출하는 경우도 흔하다. 전략적 제휴나 공동생산을 위해 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진출하는 나라의 유리한 조건 제시, 즉 유인정책 때문에 가는 수도 있다. 공장부지의 무상제공, 법인세를 비롯한 각종 조세의 감면, 파격적인 금융지원 등이 그런 예에 속한다.

결국 국내에서 사업을 계속하기엔 불리한 조건. 즉 밀어내는(push)요인과 외국의 끌어당기는(pull)요인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해외진출의 규모와 시기 등이 결정된다.
1990년대 대거 중국으로의 진출 때는 국내와의 현격한 인건비 차이가 가장 큰 모티브가 됐다. 그러나 최근의 대량 기업탈출은 정책적 요인이 크게 가미돼 있는 것 같다.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기업 활동을 옥죄는 수많은 규제조치, 반(反) 기업정서의 팽배, 각종 증세(增稅) 조치, 친(親) 노동적 정책추진 등이 복합 상승작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영세 자영업자를 포함한 기업인들의 불만이 최근 크게 고조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시장(市場)과 기업을 존중하지 않는 어떠한 경제정책도 성공하기가 어렵다.

경제성장과 일자리를 창출하고 건전한 복지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기업투자가 왕성하게 일어나고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일자리 창출의 직접 당사자인 기업인들의 사기(士氣)와 기업가정신이 살아나도록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기업들의 고비용·저효율구조를 혁파하고, 해외 엑소더스를 저지하기 위한 획기적인 정책과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최용호(경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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