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한국의 중소기업 통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장 대표적인 통계가 중소기업 실태조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벤처기업부의 위탁을 받아 만드는 국가통계다. 통계는 숫자의 나열이라 지루하고 건조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통계가 말하고 있는데 이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판로다.
중소기업 실태조사를 보자. 2015년 중소기업 사업체 수는 360만개다. 이 중에 제조업은 41만 개다. 종사자 5인 이상 중소제조업은 13만개다. 13만개 제조 중소기업에 대한 판로구조를 쫓아가 보자.
판매액을 기준으로 내수가 91.3%, 수출이 8.7%다. 내수(=100)를 자세히 보면, 다른 기업에 납품하는 비중은 84.9%인데 중소기업 납품이 52.1%, 대기업 납품이 32.8%로 나뉜다. 그리고 내수 중 일반 소비자에 직접 판매하는 비중은 9.7%이다. 전반적으로 납품비중은 늘어나고, 일반 판매비중은 낮아지는 추세다. 한편, 수급기업(납품하는 중소기업)은 전체 제조 중소기업의 47.3%이다. 수급 규모는 263조원이며, 수급기업의 매출에서 수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83.7%다. 중화학공업일수록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수출을 살펴보면, 중화학제품이 75%로 절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경공업제품이 20%, 1차 산품이 5%다. 중화학제품을 성질별로 나눠보면, 자본재가 45%, 원자재가 38%, 소비재가 17%다. 자본재와 소비재 비중은 상승하고 원자재 비중은 하락하는 추세다.
내수든 수출이든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중화학공업 비중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정부가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전략적으로 추진한 결과다. 중화학공업은 여러개 부품이 모여 하나의 최종재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정부는 1975년 계열화촉진법을 만들어 기업 간 수직계열화를 촉진했다. 기업 간 수탁과 위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럼 중소기업의 각종 지원 사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업마당(www.bizinfo. go.kr)에서 판로지원 사업을 보자. 1193개 중소기업 지원 사업이 있다. 그중에 수출지원이 276개로 사업의 수가 가장 많다. 그리고 내수지원 65개이다. 수출과 내수를 합치면, 중소기업 지원사업의 3분의 1이 판로다. 그러나 소비재와 최종재 중심의 사업이 대부분이다.
한편, 판로지원은 플랫폼 방식이다. 정부가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 플랫폼을 만들어주는 형태다. 대표적인 것이 공영홈쇼핑이다. 기업에 직접 지원을 하는 연구개발(R&D)과 성격이 다르다. 판로는 가격이나 매출과 직접 연계돼 있기 때문에 지원의 수혜기업과 비 수혜기업의 차별이 바로 드러난다. 따라서 플랫폼을 만들어주는 것이 최선이다.
중소기업의 판로구조와 판로지원 사업은 겉돈다. 판로구조는 납품(B2B)이 중심인데 판로지원은 일반 소비자(B2C) 중심이다. 그렇다 보니, 중소기업의 판로지원에 대한 수요는 많아지고, 지원사업은 늘지만, 중소기업의 현장 체감은 자꾸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판로지원은 중화학공업 제품과 납품을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중소기업 간 납품이 더 많은 게 사실이고, 납품 관계에서 기업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기에 이익을 공유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정부가 여기에 개입해 뭔가를 하기 어려운 구조다. 지난 10년간 추진했던 동반성장이나 상생협력이 뚜렷한 성과를 못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한계를 인식하고 판로지원을 수출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납품의 성격을 띠는 수출지원은 가장 위험하다. 다국적기업에 납품하던 ㈜학산이 왜 납품관계를 청산하고 독자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수출지원도 중화학공업의 특성을 반영해 큰 틀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중소기업이 협업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네트워크 자체를 글로벌화하는 것이 판로지원의 핵심이 돼야 하는 이유다.

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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