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동윤-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지난해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가 <그리스인 이야기>를 출간했다. 기원전 그리스 도시국가의 성장을 자세히 서술한 책이다. 집권자의 개혁과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 최강의 도시국가는 스파르타였다. 아테네는 기원전 6세기 초 솔론이 개혁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도시국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개혁은 성년 남자를 4계급으로 나눈 것인데 자산이 없어 양식을 얻기 위해 매일 노동을 해야 하는 시민을 제4계급으로 분류했다. 장인도 이 계급에 속했다. 그런데 당시 물가가 워낙 싸서 장인은 제품을 팔아도 빚을 져야 했다. 솔론은 그들에게 부채를 갚지 않아도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법을 만들었다.
기원전 5세기 중반 솔론의 뒤를 이은 페이시스트라토스가 등장했다. 그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항아리 생산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항아리 가격은 너무 쌌다. 단순 노예는 장인 일당의 20배, 기술자 노예는 500배를 내야 할 정도니 대량 생산은 불가능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소량 생산만 하니 자본과 기술을 축적할 기회가 없어 가내수공업 단계에 머물렀다. 대량 생산을 하면 빚을 지고 노예가 돼야 하니 솔론의 개혁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당시 최고 선진국인 코린토스가 독점하고 있는 고급 항아리를 만들도록 했다. 여기서 시오노 나나미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요즘으로 보면, 기술제품 우선구매제도나 창업기업 지원이 있었다는 거다. 덕분에 장인은 비용이 싼 소년 노예를 사서 기술을 전수하고, 기술자 노예를 사서 중간생산 과정을 맡겼다. 그리고 장인은 디자인이나 마무리에 집중했다. 실패해 빚을 져도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솔론의 개혁이 있었기에, 또 생산을 독려하는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지원이 있었기에 장인은 고급 항아리 제작에 매달렸다.
이윽고 아테네는 코린토스보다 좋은 항아리를 만들었다. 코린토스의 항아리는 색깔이나 무늬가 무겁고 정적이었지만 아테네의 항아리는 화려했고, 역동적이었다. 그리고 지중해 시장을 장악했다. 로마의 유적에서 당시 아테네 항아리나 접시가 발견된 것이 그 증거다. 고급 접시에 ‘그림 장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장인의 영역은 세분됐고, 자부심도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아테네는 그리스 최고의 국가가 됐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2018년이 시작되자마자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고용이 뒷걸음치고, 물가가 올라 서민의 고통이 커졌다는 이들도 있다. 한편, 10여일 정도 지났을 뿐인데 호들갑 떨지 말고 지켜보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공감은 한다. 그러나 너무 서둘렀다는 점은 유감이다. 먼저, 솔론처럼 과감한 개혁을 통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생태계를 바꿔야 한다. 국정 지지율이 높은 지금이 개혁의 적기이다.
그들의 혁신과 성장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혁신과 성장을 스스로 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장인들이 그러했다. 페이시스트라토스처럼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일자리를 만들고, 증가한 임금을 충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여의치 않을 때 임금보조를 해도 늦지 않다.
그렇다고 새로운 정책을 더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미 중소기업 정책은 1300여개에 달한다. 여기에 정책을 덧붙이고 예산으로 기울 필요는 없다. 기존 정책을 잘 연계만 해도 과감한 개혁과 효율적인 지원을 할 수 있다. 안 가본 길도 필요하다면 가야 한다. 그렇지만 좀 더 준비하고 치밀한 밑그림을 그리고 갔으면 한다.

오동윤-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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