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익- (주)다인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생산설비는 훌륭한데, 마케팅 설비는 없네요.” 기업체 컨설팅을 하면서 자주 하게 되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마케팅 설비는 기업 내부에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하는 마케팅 시스템을 비유해서 표현한 것이다. 마케팅 전략과 실행 업무 체계를 설비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은 아닐 수 있지만 생산 설비보다 중요한 마케팅 체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마케팅 시스템이란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각각의 기업에게 적합한 마케팅 전략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정형화된 마케팅 프로세스와 매뉴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산설비도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설비의 기능을 실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나 주변 장치를 포함한 전체 시스템을 가리킨다. 기업의 경쟁력은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규모나 제품 생산 능력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영전략이나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 등이 더 중요하다.
기업은 최신 생산설비를 경쟁적으로 도입한다. 구매할 자금이 없다면 은행 융자를 받아서라도 구매한다. “돈도 없는데 왜, 융자 받아서 생산설비를 구매했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좋은 제품을 생산해야 팔아서 매출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많은 자금을 투자해 구축한 생산설비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돈 한푼 투자할 필요가 없는 마케팅 시스템은 기업이 존재하는 동안 시장을 만들어 주고, 고객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
기술개발과 생산설비 도입은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지만 마케팅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없다. 생산설비는 돈만 있으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마케팅 시스템은 경영자의 의지, 장기간의 지식과 경험의 축적, 인력의 전문성을 요하는 일이다. 그래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제품 생산 보다는 마케팅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더 어렵다.
제품 보다는 고객이 중요하다. 제품을 만드는 것 보다는 마케팅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기업 경영과 마케팅도 제품 지향적이 아닌 시장과 고객 지향적이어야 한다. 현대 사회는 상품보다도 그 상품에 대한 이미지와 상징성을 소비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현재의 첨단 기술도 보편적인 기술이 된다. MP3 기술은 이제 기술이라 볼 수 없고 LCD TV, 스마트폰은 기술 경쟁에서 가격 경쟁, 브랜드 경쟁이 되고 있다. 기술과 품질이 비슷한 경쟁자들끼리 경쟁하면 승패는 마케팅이다.
기술로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다면 경쟁전략은 간단하다. 기술이 통하는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앞세우는 전략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기술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생산역량으로 경쟁할 것인지 아니면 마케팅 역량으로 경쟁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생산성이나 가격으로 경쟁자를 이길 수 없다면 결국 마케팅으로 경쟁해야 한다. 동일한 조건의 경쟁자에 비해 마케팅 시스템이 구축되지 못한 기업은 지속적으로 낮은 마케팅 효율성으로 인해 기업의 전체 경쟁력이 약화된다.
중소·벤처기업이 이런 문제를 방치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제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케팅 시스템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눈에 보이는 나무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뿌리는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뿌리가 튼튼한 나무가 태풍과 가뭄에도 잘 견디고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

안병익- (주)다인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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