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점을 통해 행운만을 취하고 불운을 피해가려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에 미신이 되는 것이다.
<주역>에는 오히려 하늘의 뜻을 피해가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순응해 받아들이고 자기 주도적으로 해결해가는 방법이 담겨 있다. 64괘로 구분되는 인생의 경로를 알고, 좋든 나쁘든 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을 찾도록 하는 것이 바로 <주역>이 알려주는 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공자는 <주역>을 좋아했고 평생을 두고 공부했다. <사기>의 <공자세가>에 있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의 성어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책을 묶고 있는 가죽 끈이 세번이 끊어졌다’라는 이 성어가 가리키는 책이 바로 <주역>이다.
<논어>에 실려 있는 “나에게 몇년의 시간이 더 있어서 쉰살까지 <주역>을 공부할 수 있다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허물은 없을 것이다”의 구절을 봐도 공자가 얼마나 주역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주역>의 제일 앞머리 <건괘(乾卦)>에서 건은 하늘을 뜻한다. 그리고 전설속의 동물인 용(龍)을 통해 인간세계의 이치를 말해준다. 하늘과 용이 상징하는 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건괘는 바로 인간 중에서도 최고의 성인(聖人), 오늘날로 치면 나라의 최고지도자의 흥망성쇠를 설명하고 있다.
맨 먼저 잠룡(潛龍)이다. 물위에 잠겨 있어 아직 하늘에 오르기 전의 용이라는 뜻으로 큰 능력은 있으나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인물이다. 그 때는 물용(勿用) 즉, 아직 나서서는 안 되며 잠잠히 때를 기다려야 한다. 흔히 잠재적인 대통령 후보를 가리킬 때 쓰는 잠룡이 바로 여기서 따온 것이다.
현룡(見龍)은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 활동을 시작하는 용을 말하는데 <주역>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그 다음은 비룡(飛龍)으로 마침내 세상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때도 현룡 때와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이견대인·利見大人).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고 해도 모든 일에 전지전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대권을 차지하고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됐어도 각 분야의 뛰어난 인물들을 찾아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는 이념과 정당을 떠나 오직 능력만을 보고 폭넓게 인재를 구해야 한다. 예전에 자기를 도왔던 사람, 입맛에 맞는 사람만 구해 쓴다면 혼자 일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만약 이처럼 편협하게 사람을 쓰게 되고, 권력에 도취돼 교만에 빠진다면 그 다음은 항룡유회(亢龍有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오른 용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꼭 최고지도자, 혹은 성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조직, 어떤 규모의 회사를 이끄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이 가진 힘과 권력에 도취하면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사람을 쓸 때도 바른 말을 하는 강직한 사람은 내치고 달콤한 말로 비위를 맞추는 사람만 곁에 둔다면, 후회하며 내려올 일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때를 대비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건괘>의 마지막(용구·用九)에서 말해주고 있다.
“용들이 머리를 감추고 있다. 길하다.”(見群龍无首 吉) 용이 머리를 숨기듯이 스스로 우두머리 의식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지도자의 역할을 다할 때 조직은 물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 《천년의 내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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