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훈- ASE코리아 본부장

최근 여성 중소기업인 두분을 만났다. 여성 기업인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아직 주류라고는 할 수 없다. 그들에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몇가지 예상한 것은 있었지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우선 언급한 건 결제대금만 제때 입금돼도 기업을 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하는 월급날을 견디다 못해 이 기업인들 모두 함께 일하던 직원 둘을 최근에 내보냈다며 씁쓸히 웃었다.
직원이 하던 일까지 다 하려니 몸은 더 힘들지만 속은 오히려 더 편하다고 했다. 다행히 회사를 떠난 직원들이 다른 곳에 취업해 마음의 부담은 덜었으며 주문량이 많을 때는 임시직을 이용한다고 했다.
‘계찰괘검’(季札掛劍)이란 말이 있다. 오나라의 계찰이 상국으로 사신 가는 도중에 서국을 지나는데 그 나라의 임금이 계찰의 칼을 보고 갖고 싶어 해 마음속으로 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서국에 들러 보니 그 임금이 이미 죽어 자신의 칼을 무덤 옆의 나무에 걸어 뒀다는 고사로 신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고사다.
어느 제조 대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을 거둔 후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이지 않고 수백억원을 풀어 협력업체와 나눈 게 화제가 됐다. 임직원 1인당 평균 150만원 가까운 돈이니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들의 그러한 파천황적인 성과에 대해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보답한 것이다.
당사는 독일의 세계적인 제조업체와 거래를 이어오고 있는데 이들은 품질관리도 뛰어나지만 협력업체에 대한 대금 지급에 관한 한 최고 수준의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규정된 입금 기일을 틀림없이 준수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적게 청구된 것도 정확하게 정정해 줬다. 업계의 절대적인 강자로서 기업의 생태계 조절까지 염두에 두는 듯했다.
국내 반도체 업체가 DRAM, NAND 제품 등을 석권하더니 결국은 세계에서 종합 1위 업체로 등극했다. 통상 메모리 반도체라 부르는 분야만 해도 소위 세계 전자업계의 간판급 회사가 즐비했다.
끊임없는 치킨게임 결과 결국은 2000년대 초 빅5로 재편되더니 지금은 삼국지처럼 천하 삼분지계가 됐다. 그 중 두곳이 한국 기업이다. 반도체 업계의 성공신화는 해당 기업과 오랫동안 협력업체로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실행속도와 천문학적 투자집행에 대한 결단력 그리고 행운도 따랐다고 본다. 하지만 이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다할 수 없고 성공 뒤에는 설비업체, 장비업체, 외주업체 임직원의 땀이 숨어 있다.
최근 몇년간, 다시 구한말과 비슷한 상황에 부딪친 대한민국의 현실에 마음 한편이 무겁기만 하다. 우리나라가 아직 더 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성장했다. 경제력도 있고 인구도 적지 않으며 군사력도 있고 각 분야 전문가들도 상당하다. 고슴도치로 치면 가시를 가지고 있다.
주변 열강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국력에 걸맞은 목소리와 외교력은 필요하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가 이런 생각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우리나라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기업에서 일한 지난 반생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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