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수(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정은은 두가지 목표에 매진하고 있다. 하나는 위업 승계다.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진 북한체제의 정통을 자신이 승계해 위대한 업적을 쌓아가는 것이며, ‘백두혈통’이란 정통성을 기반으로 치적을 쌓아가면서 명실상부한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이 첫째 목표다.

다음 목표는 ‘김정은 영도체계’구축이다. 군부에 둘러싸인 허수아비도 아니고 경험과 연륜이 부족한 젊은 지도자가 아니란 이미지를 빠른 시일 내에 보여주는 것이 김정은의 목표다. 이에 따라 ‘조선노동당 창당 70주년’행사를 통해 이 점을 국내외에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장성택, 현영철, 최룡해 등의 측근 숙청 및 처벌은 김정은 영도체계 구축 과정에서 걸림돌은 언제든지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그만큼 지금 북한 내부에선 숙청이 던져 준 ‘공포정치’가 일상화 되고 있다. 북한 내에선 김정은 다음의 2인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권력의 집중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1인 권력자 김정은은 공공장소에서도 숙청 얘기를 꺼낼 정도로 거친 통치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로 김정은 측근들의 몸 사리기는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측근들의 운명공동체 의식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김정은 곁을 지키는 자리에서 되도록 멀리 벗어나려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으며, 정(正)자 붙은 직책보다는 부(副)자 붙은 자리를 더 선호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왜곡된 리더십-유일영도체계
한편, ‘김정은 유일영도체계’를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과잉 충성’과 ‘과잉 동원’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시간이 갈수록 장기적 후유증이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또 지시하면 적당히 빠져나가고, 단속하면 뇌물을 ‘고이는’ 양상이 일상화 되고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통치비용이 예전에 비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자발적 지지세가 줄어드는 것을 만회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독려하다 보니 생긴 자연스런 결과다.

이와 함께 ‘성분’과 ‘토대’보다는 ‘돈’을 선호하는 추세가 더욱 짙어지고 있으며, 남조선 물건을 가리키는 ‘아랫동네 물건’이 북한 사회 안에서 인기리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3월 북한 전역의 쌀 1kg 가격은 평균 5000원이다. 당 창건 70주년(10월 10일)을 앞두고 김정은이 주민 모두에게 ‘월 기준 생활비의 100%’에 해당하는 특별 상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 북한 주민 평균 월급이 1500~6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월 기준 생활비의 100%’라는 금액이 얼마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돈으로 쌀 1kg도 사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북한 사회에 달러화, 위안화 양상이 나타난 지는 벌써 오래됐다. 적은 금액 거래만 북한 돈으로 결제하고, 큰 금액은 주로 달러나 위안화로 거래하는 양상은 이미 굳어진 관행에 가깝다. 그만큼 북한 돈에 대한 신뢰는 이미 떨어진 지 오래다.

미화 100달러, 북한 말로는 푸르스름한 빛깔을 띤 돈이라는 의미의 ‘펄돈’ 한장은 북한 돈 80만원 전후에 거래되고 있다. 공식 환율은 미화 1달러에 100원 안팎이지만, 실제 시장에선 80배 이상의 환율로 거래되고 있다. 그야말로 ‘이중가격제’ 양상이 심하다.

한편, 평양 통일시장에선 남한 물건인 ‘아랫동네’ 물건들이 꽤나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한국산 치약 큰 것 한개 가격이 북한 돈 2만5000원, 막대기 커피라 불리는 한국산 믹스커피 100개 한박스가 북한 돈 25만원에 거래되고 있으며, ‘막대기억카드’(USB)에 담긴 한국 드라마 시리즈는 대략 북한 돈 9만원 전후의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배급이 끊어진 주민들이 실제 월급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는 많이 제기되는 질문 중의 하나다. 1600~6000원 정도하는 월급만으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 월급 이외에 가급금(보너스), 직책칭호비 등을 다 합쳐도 2만원이 안 되는 경우에 어떻게 시장 시세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휴대전화로 정보유통 활발
결국 배급이 끊어진 상황에서 장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장마당 또는 시장이 북한 곳곳에 400여개가 가동 중이다. 그러는 사이 ‘돈’이 성분이나 토대보다도 삶의 기준이 되는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고 있고, 외부 동향에 민감한 층들이 증가하고 있다.

또 400만대 이상 팔린 손전화(휴대전화)를 통해 정보 유통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지역 간 시세 차익을 노리는 ‘달리기’ 장사도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북한 전역이 한 공동체로 묶이는 이른바 북한판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현재 북한 사회 내부로 흘러들어가는 정보 유입 양과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북한체제의 특성인 폐쇄성이 약화 또는 이완되고 있다. 시장 중심으로 생존을 영위하는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북한 주민들은 물가에 영향을 주는 외부 정보에 민감하게 움직일 것이며, 국가와 당국에 대한 충성과 신뢰는 점점 더 약화될 것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북한체제의 질적 전환은 가속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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