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문수(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지난 1990년대 경제위기 발생 이후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동요, 시장화의 진척 속에서 북한의 금융시스템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북한에서 금융분야는 북한의 거시경제 운영에 있어서 종전보다 그 위상과 역할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으며, 변화의 속도 또한 매우 빨라서 공식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북한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북한의 금융분야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할 것인가.

국제금융거래 사실상 중단
북한의 금융시스템을 한국의 금융시스템과 비교해 보면 그 특징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첫째, 은행제도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은 자본주의경제의 보편적 은행제도인 이원적 은행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지만, 북한은 사회주의경제의 보편적 은행제도인 단일 은행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둘째, 기업자금의 성격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기업자금을 주로 금융자금에 의해 공급하지만 북한에서는 주로 재정자금에 의해 공급하고 있다.

셋째, 가계대출 및 소비자 금융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남한에서는 가계자금대출, 주택담보대출 등 각종 가계대출 및 소비자 금융제도가 발달돼 있다. 반면 북한에서는 일반 주민에 대한 은행대출제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의 금융기관 체계는 비교적 단순하다. 중앙은행 기능과 상업은행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조선중앙은행, 대외거래와 외환업무를 담당하는 조선무역은행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북한은 정권 수립 초기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이 주도하는 국제금융질서로의 편입이 배제됐다. 더욱이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는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미국 금융시스템과의 연결도 끊어졌다. 북한은 신용도가 세계 최하위 수준이기 때문에 결제은행 및 결제방식 선택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북한은 1987년 8월 서방세계 은행단에 의해 채무상환불이행(디폴트·default) 국가로 선포된 이후 대부분의 무역거래에서 신용장방식을 이용할 수 없었고, 따라서 주로 현금결제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북한은 또한 1987년 국제사회로부터 파산국가로 선포된 이후 서방 국가와의 국제금융거래가 중단됐다. 또한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이후에는 이들 국가와의 국제금융거래도 사라졌다.

게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 북한에 대한 미국의 금융제재가 강화되면서 미국의 금융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은행들이 거래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해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기피하게 됐다. 결국 북한의 국제금융거래는 사실상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2009년 화폐개혁 이슈
아울러 새로운 문제점들이 등장했다. 첫째, 사금융이 발달하면서 공금융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사금융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본격화됐다. 둘째,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2002년 7·1조치와 2009년 화폐개혁 이후 3년 동안 쌀의 시장가격은 각각 약 20배, 200배로 치솟았다. 셋째, 외화사용이 크게 늘면서 달러와 위안화가 북한원화를 대체하고 있다. 이는 특히 2009년 화폐개혁 이후 두드러졌다.

한편 7·1조치 이후 북한 금융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는 금융법제에서 일어났다. 즉 사경제부문의 발달과 중앙계획기능의 축소는 변화를 체제 내에 흡수하고 국가관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새로운 금융제도를 필요로 했다. 그 결과 종전에 중앙은행이 담당하던 기업금융업무를 앞으로는 상업은행이 담당하도록 상업은행법이 제·개정됐다. 즉 사회주의경제의 보편적인 단일 은행제도를 포기하고 자본주의경제의 보편적인 이원적 은행제도를 도입하려 한 것이다.

이원적 은행제도를 법적으로 도입했지만 현실적으로 운용할 수 없는 현재 상황에서 북한은 기존의 은행제도에 의존해 경제정책을 전개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변화를 지향하더라도 실제로는 현재의 금융제도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부분적인, 사안적인 대응을 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금융분야에서 새롭게 등장해 북한 당국이 나름 힘을 쏟으며 추진하는 것이 외화환수를 통한 통화환수 및 통화가치 안정화, 나아가 외화자금 동원 노력이다. 다만 이러한 방식을 통한 외화흡수 노력이 통화환수라는 목표 달성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더욱이 이러한 방식으로 북한내의 외화자금 동원 및 금융기관 기능 회복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지도 아직 미지수다.
 
북한에서 시장화가 진척되고 있지만 소비재시장, 생산재시장보다 금융시장의 발달은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다. 더욱이 금융분야의 경우, 비공식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변화를 아직은 공식영역에서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

금융 인프라 측면에서 대북 진출을 추진하는 한국 중소기업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남북한 대금결제체계의 구축이다. 현재 남북한 간에는 은행간 환거래계약이 체결돼 있지 않아 제3국 은행을 경유해 대금결제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에 따라 대금결제의 번거로움과 함께 제3국 은행 개입에 따른 추가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향후 남북한 간 대금결제체계 구축을 위해 대금결제 제도적 장치에 관한 남북한 당국 간 합의와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 금융기관을 활용하기보다는 북한 진출을 도모하는 한국의 금융기관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우선 북한 진출 한국 금융기관, 남북한 합작은행 등을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성사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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