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재산(피플스그룹 대표)

‘어르신 한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경험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 은퇴자들은 경험을 통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

100세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은퇴시점을 보면 인생의 후반전이 고스란히 남은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엄청난 지혜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 때의 일이다. 어느해 봄, 환공은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인 명재상 관중(管仲)과 대부 습붕(濕朋)을 대동하고 고죽(孤竹)국을 정벌했다. 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이 진퇴양난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 “이런 때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 즉시 늙은 말 한마리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돼 큰길이 나타났다.

또 한번은 산길을 행군하다가 식수가 떨어져 전군이 갈증에 시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습붕이 말했다. “개미란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엔 산 남쪽 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치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속 일곱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이 이야기를 ‘한비자’에서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노마지지(老馬之智)란 여기서 나온 말인데,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나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경험을 쌓은 사람이 갖춘 지혜’란 뜻으로 사용된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는 650만명으로 인구 대비 13.2%를 차지하고 있어  고령사회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평균연령은 80세를 넘어가는데 직장인 평균 은퇴연령이 53세에 불과한 것을 볼 때 은퇴 후에도 30년 이상 산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런 경험을 가진 분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과 동시에 사회에서도 역할을 빼앗긴 채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전쟁을 겪고, 매서운 가난과 배고픔을 이겨내며 나라를 일으킨 경제 발전의 주역, 이 수많은 은퇴인력이 가진 기술과 경험, 지식과 지혜가 사장되는 것이 매우 아깝고 안타깝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년이 60세로 법제화돼 내년부터는 300인 이하 중소기업들도 의무적으로 시행해야한다.

공기업은 물론 일반기업들이 ‘임금 피크제’를 실시해 해당분야에 노하우를 지닌 인력을 큰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고, 개인 입장에서 보면 임금이 줄더라도 자신의 존재감과 가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많은 제도다. 문제는 이러한 장점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정년연장을 기회로 삼아 중고령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부족한 일손을 줄이는 동시에 전문성이나 기술 확보의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리 대한민국에 처해진 상황이 흡사 제나라의 군대에게 처해진 상황과 같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저마다 관중의 총명함과 습붕의 지혜를 배워 사회 전체는 물론 기업 내에서도 고령화 위기를 슬기롭게 풀어 나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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