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에서 야경이 가장 빼어난 방화수류정과 용연

산책하기 좋은 9월이다. 수원에서 요즘 가장 걷기 좋은 곳은 수원 화성이다. 성곽을 따라 이어진 길이 운치 있고, 옛 성벽과 도심의 빌딩이 어우러진 경치도 볼 만하다.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건축된 수원 화성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서 독보적인 건축물로 꼽히며, ‘성곽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빼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올해는 ‘수원 화성 방문의 해’로 볼거리와 체험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하다.

조선시대 계획도시 ‘수원’
수원 화성은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탄생시킨 계획도시다.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무덤은 처음에 일반인과 같이 ‘묘’에 불과했다. 정조가 즉위한 뒤 아버지 사도세자의 복권을 위해 묘에서 ‘원’으로, 마침내 ‘능’으로 승격했다. 조선 땅에서 가장 좋은 자리로 알려진 융릉(사도세자의 능) 자리에는 수원부가 있어 많은 백성들이 살았다. 정조는 수원부와 마을을 통째로 옮길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집을 짓고 이사할 비용까지 챙겨줬다고 한다. 이전한 곳에 성벽을 쌓은 것이 수원 화성이다.

수원 화성은 정조의 명을 받아 실학자 정약용이 설계하고, 채제공이 축성 책임을 맡았다. 1794년에 착공해 1796년에 완공했다. 둘레 약 5.7km, 성벽 높이 4~6m에 땅속 깊이 1m로 기초를 다졌다. 동서남북에 놓인 창룡문·화서문·팔달문·장안문, 군사를 지휘하는 서장대와 동장대, 5개 포루, 봉돈, 치(치성), 공심돈, 수문, 각루, 노대, 적대, 암문 등 성벽과 모든 건물까지 불과 2년9개월(장마 등 공사를 못한 기간을 제하면 약 2년6개월)에 완공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수원 화성 여행의 첫걸음은 화성행궁에서 시작한다. 행궁을 둘러본 뒤 화성열차를 타고 동장대(연무대)로 이동한다. 행궁은 왕이 전란을 피해 잠시 머물거나 나들이할 때 묵는 임시 궁궐인데, 화성행궁은 화성을 정기적으로 방문한 정조를 위해 지은 궁궐이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를 옮긴 뒤 해마다 화성을 방문했다. 주로 수행 비서 몇명을 대동하고 조용히 다녀갔는데, 1795년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큰 행차를 했다. 화려한 행렬과 함께 이틀에 걸쳐 화성으로 이동한 뒤 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 진찬연을 열었다. 다음날은 고을 사람들을 불러 양로연을 베풀고 과거를 치르는 등 화성에서 나흘 동안 머물고, 다시 이틀에 걸쳐 한양으로 돌아가느라 8일이 걸렸다.

수원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은 4대문 중 북문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남문을 정문으로 삼는데, 정조가 한양에서 올 때 북문에 먼저 닿아 장안문이 정문이 되었다. 문 밖으로 항아리처럼 둥글게 옹성을 쌓아 견고함을 더했다. 장안문에서 서쪽으로 가면 화서문을 지나 팔달산 정상에 세운 서장대에 이르고, 동쪽으로 가면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을 지나 동문인 창룡문에 닿는다. 남문인 팔달문 밖에는 팔달문시장, 수원영동시장, 지동시장 등이 발달했다. 이중 팔달문시장은 정조가 팔도의 장꾼을 불러들여 만든 시장이라 특별하다.

축성을 수월하게 도와주는 각종 기계를 발명한 점도 인상적이다. 정약용이 도드래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거중기, 녹로, 유형거 등을 발명해서 활용했다. 실학사상에 입각해 겉모양보다 실용적인 면에 치중한 부분도 눈에 띈다. 공격용 대포를 넣는 포루의 지붕이 말을 타거나 긴 창을 들고 갈 때 부딪힐 위험이 커, 성벽 안쪽의 지붕을 직선으로 마감한 것이 그 예다.

장안문은 크고 위엄이 있고, 화서문은 전쟁을 겪고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서 보물로 지정됐다.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은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고, 동장대 앞에서는 활쏘기 체험이 가능하다. 전쟁으로 부서지고 도시화로 훼손되기도 했지만, 수원 화성은 지금도 시민들이 일상에서 늘 함께하는 곳이다. 여름에는 저녁 산책이 좋고, 봄가을로 화창한 날에는 멋진 피크닉 장소가 된다.

한국전쟁으로 부서진 화성을 완벽하게 복원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받은 데는 <화성성역의궤>의 힘이 크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 큰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기록해서 의궤를 만들었다. 화성 축성 전 과정과 공사 일정, 공사 책임자, 각 건물에 대한 설명 등을 그림과 글로 남긴 종합 보고서가 <화성성역의궤>다.

10월까지 각종 문화행사 ‘풍성’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 앞에서 매일(월요일 제외) 오전 11시에 무예24기 시범 공연이 펼쳐진다. 정조 시대에 완간된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24가지 무술을 무예24기라 한다. 공연 중에는 마상 무예를 제외한 도·검, 창·봉, 맨손 무술 등을 실감 나게 선보인다.  4~10월 일요일 오후 2시에는 장용영 수위 의식이 벌어진다. 정조가 창설한 장용영(국왕 호위 전담 부대) 군사들의 수위 의식과 훈련 모습을 되살렸다. 공연 중 정조와 혜경궁 홍씨로 분장한 배우가 객석을 돌며 일일이 악수하고 기념사진을 함께 찍어 관람객의 반응이 좋다.

화성행궁과 창룡문 중간쯤 자리한 수원화성박물관은 화성의 우수성을 알리고, 축성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 상설 전시를 하는 화성축성실과 화성문화실에서는 축성 과정과 도시의 발전, 축성에 참여한 인물, 8일간 이어진 정조의 행차, 장용영의 모습 등을 이해하기 쉽게 전시한다.

화성행궁 앞 너른 광장은 평소에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연을 날리는 등 자유롭게 이용하고, 10월에 열리는 수원화성문화제 기간에는 화려한 행사의 장으로 거듭난다.

광장 한쪽에는 지난해 10월에 개관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있다. 외관이 깔끔하고 현대적이며, 내부로 들어가면 독특한 구조가 눈에 띈다. 현대산업개발에서 건물을 지어 수원시에 기부했다. 〈시대의 선각자, 나혜석을 만나다〉 〈PLAYART-게임으로 읽는 미술〉 등 흥미로운 전시가 자주 기획된다. 지금은 다음달 16일까지 가상현실을 테마로 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가상현실〉 전시가 열린다.

월화원은 효원공원 서편에 조성한 중국식 전통 정원이다. 경기도와 광둥성이 우호 교류 발전 협약을 체결하고 상대 도시에 전통 정원을 짓기로 한 약속에 따라 호수를 파고 흙을 쌓아 산을 만들고, 중국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건물을 세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광둥성의 어느 정원에 온 듯 착각이 든다. 월화원을 짓기 전에 광저우에 한국식 정원을 만들었는데, 담양 소쇄원을 모델로 했다.

월화원에서 나와 도로를 건너면 나혜석거리가 시작된다. 1896년 수원에서 태어난 나혜석은 일본 유학 시절 유화를 전공했다. 조선 여성으로 처음 유화 개인전을 열고, 시와 소설,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과 여권신장에 힘썼지만 본인은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수원 중심가에 조성된 나혜석거리에는 그의 동상과 글, 조형물이 설치됐다. 낮보다 밤에 찾는 이가 많고 화려한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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